독일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 0.7%까지 하락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매년 0.7%씩 자산가치가 줄어든다. 독일만이 아니다. 세계 채권시장 14조달러의 4분의 1이 마이너스 금리 채권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일본과 유럽의 일이지만 다른 나라도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니게 되었다. 마이너스 금리는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다. 금리는 체온처럼 경제의 변화를 반영하는데, 그렇다면 경제에 어떤 변화가 온 것일까. 이런 변화는 일시적인가 아니면 구조적인가.
금리가 마이너스 될 수 있다는 건 경제학자 새뮤얼슨(P. Samuelson)이 1958년에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인구증가율과 금리가 같을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생물학적 금리’라고 불렀다. 인구가 감소하면 금리도 마이너스가 된다. 너무 단순한 모형이라 현실에 적응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공교롭게도 마이너스 금리로 접어든 일본과 유럽은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사회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새뮤얼슨이 정의한 ‘생물학적 금리’를 구해보았다. 선진국은 중간값이 마이너스 0.6%이며 동유럽은 마이너스 0.4%,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1.7%다. 우리나라는 마이너스0.9%로 조사 대상 34개국 중 일본,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스페인 정도만 우리보다 낮다. 인구가 전반적으로 저금리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금리를 저축과 투자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금리가 하락하는데 초과 정도가 심하면 이론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최근의 수명 연장과 기술 혁신은 저축 초과, 즉 저축을 늘리고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 지금 지출하지 않고 미래 지출을 위해 저축하려 한다. 돈을 지금 사용하지 않고 미래로 이연하는 데 따른 대가를 ‘시간 선호’라 하여 금리로 보상받는데, 수명이 너무 길어지면 현재 돈보다 미래 돈을 좋아하는 ‘역(逆)시간 선호’가 발생하여 금리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한편 기술 혁신은 자본을 덜 쓰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투자 수요를 줄인다. 과거에 자동차 100대를 생산했다면, 이제는 50대 생산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유하면 된다. 기술 혁신이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면 자본 스톡(stock)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 초(超)수명으로 ‘역시간 선호’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네트워크 중심의 기술 혁신으로 투자 수요가 줄면 금리가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금리가 마이너스여도 채권을 사는 이유는 뭘까? 마이너스 금리라도 더 하락하면, 예를 들어 마이너스 0.2%에서 마이너스 0.7%로 하락하면, 채권가격 상승으로 돈을 번다. 최근 유럽채권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을 얻은 이유다. 또 하나. 운용기관들은 성과를 벤치마크(채권기준지수)에 대비해서 평가하는데 여기에 장기 국채가 많이 들어 있다. 따라서 벤치마크 성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면 금리가 마이너스라도 벤치마크 채권 구성과 비슷하게 보유해야 한다.
마이너스 금리에서 계속 더 내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 내려가면 채권 대신 ‘금리 0%의 현금’을 보유하면 된다. 다만 현금을 거액 보관하려면 ‘보관ㆍ안전ㆍ수송ㆍ보험’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은 보관 금액이 커질수록 줄어들기는 하지만 대략 연 0.5~1%에 이른다고 하니, 마이너스 금리가 이 현금보관 비용을 초과해서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마이너스 금리는 경기순환적 요인 이외에 초수명과 기술 혁신이라는 추세적 요인이 내재해 있다. 이들은 인류가 처음 겪는 구조적 요인이어서 당분간 초저금리를 탈출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구조적인 초저금리 대열에 가담할 가능성이 크다. 8월 소비자물가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되었는데 금리도 새로운 세계를 볼지 모르겠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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