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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극복한 이덕희 “박수 소리 들었던 기적, 다시 경험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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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극복한 이덕희 “박수 소리 들었던 기적, 다시 경험하고파”

입력
2019.09.06 0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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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투어 최초 청각장애 선수 승리

7세 때 사촌형 따라 테니스 입문

“남보다 더 뛰어 체력부담 크지만

들리지 않아 공에 집중 더 잘돼”

이덕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체육과학관 실내코트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덕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체육과학관 실내코트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테니스계에선 청각장애를 딛고 세계 프로테니스 무대에 도전장을 낸 이덕희(21ㆍ현대차 후원ㆍ서울시청ㆍ208위)를 ‘다른 선수보다 늘 한 걸음 더 뛰는 선수’라 부른다. 열심히 뛰기도 하지만 심판의 콜을 들으면 경기를 멈추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공이 라인을 넘어도 끝까지 쫓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뛰어야 하기에 억울할 법도 할 텐데, 이덕희는 “체력 부담이 크지만, 오히려 들리지 않아 공에 집중이 잘 된다”며 “심판에게 수신호로 인ㆍ아웃을 표현해주면 좋겠다고 먼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며 미소 지었다.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평범한 21살 청년 이덕희를 4일 서울 송파구의 한국체대 실내코트에서 만났다.

이덕희는 현재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선수 중 하나다. 지난달 20일 미국에서 열린 ATP 투어 250 시리즈 윈스턴세일럼 오픈 단식 1회전에서 세계랭킹 120위의 헨리 라크소넨(27ㆍ스위스)을 2-0(7-6<7-4> 6-1)으로 잡고 생애 첫 투어 본선 승리를 거두면서다.

47년의 ATP 투어 역사상 청각 장애 선수가 단식 본선에서 이긴 건 최초였다. CNN과 BBC를 비롯한 외신들도 그의 승리에 주목했다. 이덕희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며 “단 두 포인트만 따면 승리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가 와 경기가 중단됐었는데, 경기력이 떨어질까 걱정돼 조급하기도 했다”고 첫 승의 긴박한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덕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체육과학관 실내코트에서 훈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덕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체육과학관 실내코트에서 훈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덕희는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3급 청각 장애인이다. 그가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5살 때였다. 이덕희는 “처음 내가 들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알았을 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저 머리가 멍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가 테니스를 만난 건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7세 때 사촌 형을 따라 갔다 테니스에 마음을 빼앗겼다.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입문한 그는 범상치 않은 재능으로 주니어 대회를 휩쓸었다. 15세였던 2013년 4월에는 성인 대회인 일본 스쿠바 퓨처스 본선 1회전에서 승리하며 역대 최연소로 세계랭킹 포인트를 획득했다.

당시 라파엘 나달(33ㆍ스페인ㆍ2위)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덕희 스토리는 우리가 항상 도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프로 선수들 사이에선 라켓에 공이 맞는 소리만으로 공이 정타인지, 스핀인지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테니스에서 소리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청각장애는 실력 앞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이후 이덕희는 19살이던 2017년 세계랭킹 130위까지 오르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단식 동메달을 따내며 12년 만에 한국에 남자단식 메달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투어에선 잠시 주춤하며 200위권 바깥으로 밀려난 이덕희는 다시 한 번 선전을 다짐하며 이날도 윤용일 코치, 김태환 트레이너와 훈련에 한창이었다. 습한 날씨에 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지만, 연습에 집중하는 그의 눈매는 매서웠다.

이덕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체육과학관 실내코트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덕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체육과학관 실내코트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덕희의 주무기는 바로 공격적인 포핸드다. 테니스 선수로서는 작은 174cm의 키지만 빠른 발과 정확하고 강한 스트로크로 코트의 구석구석을 찌른다. 이덕희는 “포핸드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플레이스타일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공격적인 게 장점”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근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평가를 받은 백핸드와 서브를 위주로 맹훈련 중이다. 윤 코치는 “덕희는 포핸드가 일품이라 포핸드 스트로크 위주로만 단조롭게 경기를 풀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 한 가지만 가지고는 투어 레벨에서 승부를 볼 수 없다”며 “네트 플레이 등 다양한 경기 운영 방식을 익히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지만, 실제로 만난 이덕희는 오히려 평범한 21살 청년에 가까웠다. 그는 “쉴 때는 게임을 하거나 TV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특히 거리를 걸으면서 이곳 저곳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 답했다. 훈훈한 외모에 학창 시절 인기가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그런 거 하나도 없었다. 편지 한 통을 못 받아봤다”고 손을 내저으며 웃기도 했다. 그는 “원래 내성적이던 성격도 테니스를 하면서 지금처럼 낙천적이고 활발하게 바뀌었다”며 “테니스를 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최근엔 공에 대한 집중력을 기르고 싶어 집중력 훈련과 관련된 책을 찾아 독서를 하는 게 취미일 정도다.

이덕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이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성장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덕이 컸다. 그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다녔고, 수화(手話) 대신 구화(口話)를 배워 입모양만 보고도 상대방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이덕희의 당장의 목표는 챌린저 대회 타이틀이지만 ‘진짜’ 꿈이 하나 더 있다. 우상 로저 페더러(38ㆍ스위스ㆍ3위)와 큰 대회에서 만나 직접 겨루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숨겨왔던 비밀 하나를 털어놨다.

“어렸을 적 주니어 메이저 대회에 나갔을 때 일이에요. 경기 중간에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갑자기 미세하게 들렸어요. 관중들이 많으면 그 소리가 엄청 커서 작지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때 팔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어요. 앞으로 좋은 성적을 거둬서 큰 대회에 나가 다시 한 번 그 때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요.”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차승윤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이덕희는_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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