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차르(황제)’라 불리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에 최근 균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오는 8일 진행되는 러시아 지방선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년 같으면 푸틴 정권이 낙점한 후보가 당선되고 말았겠지만, 올해에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시위가 여름 내내 이어지면서 대규모 반(反) 정부 시위로 확대되는 등 기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3일(현지시간) ‘러시아인들이 ‘푸틴 없는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가 뜻밖의 정치적 풍향계가 됐다”고 분석했다. 8일에는 모스크바 시의회의 45개 의석에 대한 투표와 함께, 16개주 주지사 선거가 열린다. 푸틴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이후 재집권할 의향을 이미 드러낸 상황으로, 이를 위해 총선(2021년)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선거에서 압승해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공고하던 푸틴의 지배력을 흔든 시위는 7월에 시작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야권 정치인들을 서류 제출 미비 등의 이유로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하게 방해하자 시위가 촉발됐고, 이후 반정부ㆍ반푸틴 시위로 커졌다. 수년간의 경기 침체에 더해 부정선거 논란과 연금 개혁 등이 겹치면서 푸틴의 인기가 시들해진 게 결정적이었다. 미 CNBC 방송은 현지 여론조사 기관이 공식 발표한 푸틴의 지지율은 올해 7월 기준 68%이었지만, 전문가들은 “사실 40~50% 수준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시위가 집중됐던 모스크바에서는 여당 ‘통합러시아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평소 여당 소속으로 출마하던 후보들도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FP는 전했다. 푸틴은 이미 지난해 가을 지방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패배를 맛봤다. 3개 주지사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패배했고, 다른 주에서는 여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투표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나아가 FP는 민심 악화뿐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회의론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올해 미하일 아비조프 전 장관 등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잇따라 체포됐는데, 이는 지난 2007년 푸틴의 재집권을 앞두고 정부기관 사이에 알력 다툼이 벌어지던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선임 연구원 안드레아 켄달-테일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 같은 엘리트 내분과 영향력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러시아 연구소장인 샘 그린은 FP에 “민중 봉기와 경기 침체, 그리고 지배 엘리트들 사이의 불안 징후가 합쳐진 것은 전례가 없다”면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거리에서의 위기가 엘리트 내부의 신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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