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선임된 성민규(37) 롯데 신임 단장이 거인의 체질을 바꿀 수 있을까. 성 단장이 메이저리그 구단, 그 중에서도 지난 2016년 108년 만의 우승을 달성한 시카고 컵스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컵스의 현 사장 테오 엡스타인(45)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리고 있다.
엡스타인 사장은 200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28세 10개월의 나이로 단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나이보다 대단한 건 그가 남긴 성과였다. 86년 동안 우승하지 못해 생긴 밤비노(1919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베이브 루스의 별명)의 저주에 짓눌려 있던 보스턴은 엡스타인 부임 이후 2004년과 2007년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2011년부터 사장으로 부임한 시카고 컵스에서도 108년간 우승에 실패한 염소의 저주를 깨고 2016년 우승을 차지하며 저주 파괴자(Curse breaker)라는 별명을 증명했다.
자연히 컵스 출신인 성 단장에게도 비슷한 기대가 쏠릴 수밖에 없다. 롯데 역시 당시 레드삭스나 컵스만큼 쉽지 않은 상태다. 이대호(37), 손아섭(31) 등 고연봉 선수가 많아 팀 연봉 1위지만 손아섭 이후 주전급 선수 육성에 실패해 팀 성적은 최하위다. 원년 팀이지만 정규시즌 우승이 없고 암흑기를 여러 번 겪은 탓에 약팀이라는 이미지도 널리 퍼져있다. 높은 연봉, 낮은 성적, 뜨거운 팬심까지 당시 엡스타인과 지금 성 단장은 비슷한 상황이다.
“롯데라는 팀의 특성을 파악하겠다”는 성 단장의 말처럼 팀 문제 진단은 필수다. 과거 엡스타인 역시 팀을 맡고 그 팀에 맡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했다. 연봉이 높았지만, 공수 불균형이 심했던 레드삭스에서 결장이 많았던 프랜차이즈 스타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팔아 팀 수비를 보강했다. 부족해진 공격력은 데이비드 오티즈 등 저평가 받던 타자들을 영입 보강해 해결했다. 제로 베이스에서 새 얼굴들을 키워야 했던 컵스에서는 부상이 덜한 타자 유망주 수집에 집중했다. 덕분에 짧은 기간 안에 2016년 내셔널리그 MVP인 크리스 브라이언트(27)를 중심으로 하는 화려한 타선이 완성됐다. 우승 목전에서 던지는 승부도 엡스타인 야구의 특징이다. 2004년 커트 실링, 2007년 조시 베켓, 2016년 아롤디스 채프먼(31)을 데려오면서 세이버 메트리션 단장 중 처음으로 우승에 성공했다. 높은 팀 연봉, 지지부진한 유망주 성장에 고전하는 롯데에 엡스타인 모델이 거론되는 이유다.
엡스타인이 큰 그림을 완성하는 도구는 데이터와 인성 관리이다. 모션 캡쳐 카메라로 대표되는 컵스식 분석 기법을 동원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데이터로 축적해 육성에 적극 활용했다. 숫자만 중시하는 데이터 야구라는 인식과 달리 엡스타인 야구의 또 다른 축은 인성이다. 엡스타인은 컵스 스카우트의 원칙이 ‘실패를 대하는 자세를 본다’라며 "최고의 타자도 열에 일곱은 실패한다는 말처럼 야구는 실패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육성 시스템이 갖춰질지 여부도 관심이 쏠린다. 엡스타인 사장은 컵스 부임 후 치열한 내부논의를 거쳐 ‘컵스 웨이’라는 259쪽짜리 매뉴얼을 완성했다. 선수 개개인에게 필요한 육성 방법을 명문화시킨 것이다. 땅콩버터와 식빵으로 대표되었던 무관심했던 마이너리그 관리도 180도 달라졌다. 열량만 채우던 식사에서 선수에 대한 투자로 바뀌었다. 이제 어린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는 시간마다 필요한 수분 보충과 개개인에게 맞춤 도시락이 제공된다. 역시 프로세스를 강조한 성 단장이 ‘자이언츠 웨이’를 만들고 상동 퓨쳐스 구장을 새롭게 바꿀지도 궁금하다.
차승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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