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나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아래가 너무 쓰리고 아파요. 동네 병원에서 진찰했는데 음부에 물집이 생겼다고 헤르페스인 것 같다고 했어요. 며칠 동안 약을 먹고 바르고 했는데 아직도 아파요. 그런데 제 남자친구는 거기에 살이 좀 까졌는데 자기 말로는 피부가 약해서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데요. 제 남자친구도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나요?”
25세 여성 환자가 생식기와 요도 주변이 아프다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진찰을 해보니 예상대로 ‘생식기 헤르페스(genital herpes)’였다. 다행히 물집은 없어졌지만 아직 다 아물지 않고 질 점막 바깥쪽이 헐어 있어 약을 처방해줬다. 그런데 처방하고 나니 병원의 진료기록시스템에서 팝업 창이 떴다. 생식기 헤르페스는 법정 감염병이어서 보건소에 신고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별일 아닌 거 같지만 생식기 헤르페스는 성 매개 감염병, 즉 성병이다. 성에 대해 자유로워지면서 성병이 많아졌다. 보통 성병이라면 임질·매독 같은 심각한 성병만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흔한 성병이 바로 생식기 헤르페스다.
성생활을 하는 성인의 20% 이상이 헤르페스에 한 번 이상 감염되고, 특히 젊은이에게 흔하다. 문제는 한 번 걸리면 몸 안에 바이러스가 계속 남아 있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재발하고 바이러스를 상대방에게 옮길 수 있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시작하면 감염 부위 인근 피부에 물집이 여러 개 뭉치듯이 잡힌다. 특히 물집 안에는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엄청나고 많고 전염력이 아주 높아 키스나 펠라치오 정도 등 가벼운 접촉만으로 전염된다. 따라서 헤르페스가 있거나 의심되면 성적 접촉을 피하고 가능하면 콘돔을 쓰는 게 좋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점막으로 쉽게 침투하므로 점막에 상처가 있다면 더 그렇다. 다행히 바이러스 보유자의 20%에게만 발병하고, 이들 중 20%만 재발한다.
성생활로 전염되는 또 다른 바이러스 질환이 있다. 성생활보다 수혈이나 마약 주사 등으로 인한 혈액 감염이 더 흔한 바이러스 감염병이 바로 에이즈, 정확히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이다. 때 늦었지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재조명됐던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인 폐렴으로 절명했다. 퀸이 다시 뭉쳐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해 마련했던 글로벌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의 오프닝 공연과 에이즈로 투병하며 무척 수척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진다.
지금은 에이즈에 걸려도 조기 진단해 약을 잘 먹으면 별다른 지장 없이 살 수 있는 감염병의 하나가 됐다. 처음 에이즈가 소개됐을 때에는 ‘현대의 흑사병’으로 불렀다. 의대 시절 면역학 수업을 받을 때 뾰족한 뿔이 사방으로 솟은 말 그대로 뿔 달린 둥근 악마 같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사진을 보면서 치료제가 없는데다 면역력이 없어 감기만 걸려도 폐렴으로 악화돼 결국 목숨을 잃는 무서운 병이라 두려워 했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하지만 그때는 SF 영화에서나 화상 통화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강의실에서 노트 필기도 손으로 하지 않으며, 인공지능(AI)이 환자 치료에 개입하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2019년 현재 에이즈는 완치만 하지 못할 뿐 바이러스 숫자를 줄여 인체 면역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약이 개발됐다. 약을 먹으면서 관리만 잘하면 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치료기술이 발전됐다.
그러면 HIV 감염보다 흔하고,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는 헤르페스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성병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헤르페스에 걸렸음을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성관계를 해 전염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증상이 있어도 무관심하게 지나가 자기도 모르는 새 바이러스 보균자가 돼 전염원이 되기도 한다. 아주 쉽게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인 콘돔을 쓰는 방법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