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州) 치르본의 대형 몰. 한 한국 청년이 버스에서 내리자 탄성이 쏟아졌다. 인파와 환호는 경호원들의 저지선을 무너뜨릴 듯 청년을 뒤쫓았다. 그가 행사장 제일 뒷좌석에 앉자 대다수 관객은 화려한 태권무가 펼쳐지는 정면 무대엔 흥미를 잃었다. 청년을 휴대폰에 담거나 청년과 눈을 맞추기 위해 무대 뒤를 응시했다. 무대가 뒤바뀌는 진풍경 속에서 관객들은 “나 좀 봐달라”고 외쳤다. “한솔!” “장한솔!”
장한솔(25)씨는 연예인도, 아이돌도, 한류 스타도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국내에선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선 인구 300명 중 두 명이 팬일 정도(체감도는 그 이상이다)로 유명한 유튜버다. 현재 그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이 2~7일 진행하는 자바섬 횡단 ‘트코 낭 자와(Teko Nang Jawaㆍ한국친구 자바에 오다)’ 행사에 동행하고 있다. 해변, 호텔, 식당, 공장, 왕궁, 박물관 등 어디든 그가 보이면 환호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청년들이 쇄도했다. 그를 만나려고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다”는 팬도 있었다. 시작한 지 3년, 전업한 지 11개월 만에 인도네시아 청춘들을 홀린 사연을 현장에서 들어봤다.
그는 외환위기로 부도를 당한 부모를 따라 네 살 때인 1998년 인도네시아 동부자바주 말랑에 정착했다. 가정 형편이 썩 좋지 않았고, 여기 왔으니 인도네시아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어머니 권유로 국제학교 대신 현지 학교와 교회를 다녔다. 일주일 내내 인도네시아어를 써야 했고, 자연스레 일종의 지역 사투리인 자와(자바)어도 습득했다. 공부보다 춤, 학생회 활동에 끌렸다. “현지 학교는 수준이 낮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옳았다”고 그는 말했다. 대학은 싱가포르로 갔다.
졸업을 앞둔 2016년 9월 진로를 고민하던 중 경영학 전공과 방송국 아르바이트 경험, 평소 자신에게 현지인들이 한국에 대해 많이 물었다는 기억을 살려 영상을 만들었다. ‘교도소를 출소하면 왜 두부를 먹나’ ‘출산하면 꼭 미역국을 먹나’ ‘김치는 어떤 맛인가’ 등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다 궁금해하던 한국 문화와 풍속에 대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자바어로 소개했다. “처음엔 입사 지원서에 이력 하나 채울 생각”이었다.
첫 달 100명에 불과했던 구독자는 지난해 3월 10만명이 됐다. 그 사이 그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취업도 했다. 첫 회사는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두 번째는 3개월 만에 파산했다. 재취업을 접고 구독자가 30만명에 달한 유튜브에 매진하기로 했다. “헛된 꿈을 좇는” 걸 걱정한 어머니가 말렸지만 “3년만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편집 전담 현지 직원들을 채용하고 영상 제작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늘렸다. 구독자가 매달 10만~15만명씩 늘었다. “실패가 득이 됐다”고 했다.
그의 유튜브 채널 ‘코리아 레오밋(Korea Reomit)’의 현재 구독자 수는 189만명, 인스타그램 구독자는 51만명이다. 인도네시아 유튜버 상위 10%에 들어간다. 인도네시아는 TV보다 유튜브 시청 비율이 훨씬 높다. 올린 영상은 450개, 구독자 남녀 비율은 3대 7, 대부분 18~24세다. 지난해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청계천을 방문했을 때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이 먼저 제안해 찍은 영상은 역대 2위(339만뷰)에 올라있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 비결로 “자바어 진행”을 첫손에 꼽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적은 구독자 수에도 감사했어요. 구독자가 늘수록 거만해지는 마음을 다스렸고요. ‘못생겼다’는 댓글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악플(악성댓글)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적극 반영했어요. 자극적인 것보다 솔직한 제 이야기와 삶에 공을 들입니다. 영상을 올리기 전에 ‘이걸로 전달하려는 게 뭐지’라고 자문해요.”
평범한 한국 청년에게 열광하는 까닭을 인도네시아 청년들에게 물었다. 대학생 이탄(21)씨는 “콘텐츠가 독창적이고 (장한솔이) 착하다”고 했고, 고등학생 나우라(16)양은 “제작 영상이 젊은 층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성월(53)씨는 이제 “오늘도 구독자 늘었더라”라고 안부를 묻는 든든한 우군이다. 이번 대사관 행사 참여도 “돈은 안 되지만 너는 한국인이고, 민간 대사로서 힘을 보태라”라며 강력 추천했다. 장씨 덕에 행사는 풍성해졌다. 인터뷰하고 기사 쓰는 하루 사이, 장씨 유튜브의 구독자는 6,000명 이상 더 불어나 있었다.
치르본ㆍ브르브스(인도네시아)=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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