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히는 귀성길…이색 휴게소에서 제대로 쉬어 가자
고속도로도 귀성객도 명절마다 몸살을 앓는다. 휴게소도 밀려드는 차량과 인파로 북새통이다. 이래저래 피할 수 없다면 느긋하게 마음먹고 제대로 쉬어가자. 잠시 들르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싶고, 일부러 찾아가는 이색 휴게소가 늘고 있다. 당당히 한국관광공사의 9월 추천 여행지에 오른 곳이다.
◇이 정도면 테마파크, 이천 덕평자연휴게소(영동고속도로 양 방향)
휴게소 건물 뒤편으로 나가면 널찍한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꾸민 중앙정원이 나타난다. 단순한 눈요기 수준 이상이다. 자작나무 숲에 연인들을 위한 러브 벤치가 놓여 있고, 홍익대학교와 협업해서 만든 아트 쓰레기통도 눈길을 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들면 추억의 노래를 들려 준다. 반려동물과 함께라면 중앙정원 옆의 ‘달려라 코코(KoKo)’를 놓칠 수 없다. 애견 놀이터ㆍ카페(코코카페)ㆍ위생실과 애견 호텔(코코하우스)까지 갖췄다.
해가 지면 ‘별빛정원 우주’에 각양각색의 조명이 불을 밝힌다. ‘로맨틱가든’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불빛 쇼가 펼쳐진다. ‘터널갤럭시101’은 국내에서 가장 긴 101m 빛 터널로 은하수를 걷는 듯 환상적이다. ‘아트큐브’의 파이프오르간 조형물에는 오로라처럼 황홀한 빛이 춤을 춘다. ‘우주타워’는 특별하고 아찔한 경험을 선사한다. 천천히 회전하는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35m 발아래 펼쳐지는 빛나는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먹거리도 빠지지 않는다. 대표 메뉴인 덕평소고기국밥은 2016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바삭바삭한 튀김 옷에 촉촉한 살코기가 일품인 덕평왕돈가스도 인기다.
◇강원도의 속살, 인제 내린천휴게소(서울양양고속도로 양 방향)
내린천휴게소는 밖에서 보면 비행기 같고 하늘에서 보면 ‘V’ 자 모양이다. 건물 3~4층은 환경 전시관이다. 제1전시실은 국내 최장 인제양양터널 건설 과정을, 제2전시실은 백두대간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내린천휴게소의 가장 큰 자랑은 천혜의 자연 풍광이다. 옥상 전망대에 서면 굽이굽이 연결된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 아래에는 시원하게 내린천이 흐른다. 맑은 날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풍경도 멋있고 비 온 뒤 안개가 산등성이를 넘는 풍광도 환상적이다. 생태습지공원엔 버드나무, 메타세쿼이아, 자작나무 숲에 부들, 창포, 가시연꽃 등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있다. 자연 속을 산책하는 공간이다.
세련된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4층 카페에선 넓은 유리창으로 우람한 산세가 가득 들어온다. 내린천휴게소는 평상시 동해안으로 이동하는 여행객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강원도 전통 음식과 젊은 층을 겨냥한 음식이 많다. 인제의 콩을 이용한 두부 요리와 황태정식은 언제나 인기다. 떡볶이, 김밥, 도넛 프랜차이즈 업체도 다수 입점해 있다. ‘인제군 로컬푸드 행복장터’에서는 용대리 황태와 오미자, 천연 조미료 ‘웰빙구시다’가 잘 팔린다.
◇국보 품은 유적, 단양휴게소(중앙고속도로 춘천 방향)
경치가 빼어나거나 소중한 가치를 지닌 물건에 ‘국보급’이라는 수식을 붙인다. 중앙고속도로 춘천 방향 단양휴게소는 실제 국보를 품고 있다.
휴게소 건물 뒤편 오솔길을 따라 단양적성(사적 제265호)으로 오르면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를 만난다. 적성비는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 영토인 단양 지역을 점령한 후 세운 비석이다. 땅속에 30cm쯤 묻힌 상태로 방치돼 있던 것을 1978년에야 발견하고 역사적 가치를 확인했다. 적성은 영주에서 죽령을 넘어 남한강을 건너기 전 성재산 정상 부근에 축성됐다. 둘레가 약 900m에 이르는데 지금은 안쪽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 산길을 내려오면 남한강 충주호 물길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가벼운 마음으로 휴게소에 들렀다가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단양휴게소의 대표 먹거리는 지역 특산물인 마늘을 이용한 ‘마늘왕돈가스’다. 크기도 맛도 ‘엄지 척’이다.
부산 방향 단양휴게소에는 야생화테마공원이 조성돼 있다. 장승과 솟대, 미니 풍차, 물레방아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산책로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양마늘수제떡갈비’는 한국도로공사 충북본부가 선정한 명품 음식이다. 단양 육쪽마늘을 아낌없이 넣었지만, 달콤하고 고소하다.
◇휴게소가 유원지, 옥천 금강휴게소(경부고속도로 양 방향)
휴게소 자체가 여행지인 곳, 굳이 원조를 찾는다면 1971년 문을 연 금강휴게소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식사하고 차 마시고 여기저기 둘러보면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상하행선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휴게소로 회차가 가능해 드라이브 삼아 일부러 찾는 여행객도 있다.
금강휴게소는 산과 강이 맞닿은 주변 경치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차장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도록 건물을 배치했고, 통유리를 통해 바깥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휴게소 이용객은 차를 대고 식당 건물로 바로 들어가는 대신 뒤쪽 테라스로 먼저 간다. 테라스에 있는 ‘사랑의 그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휴게소에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낚시와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는 강변 유원지다. 주위에 금강의 별미인 도리뱅뱅이를 파는 간이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휴게소의 별미 역시 도리뱅뱅이다. 작은 민물고기를 기름에 튀긴 뒤 새빨간 고추장 양념을 발라 조리는데, 보기에도 군침이 흐른다. 비린내 없이 고소하고, 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휴게소에서 굴다리 아래를 통과하면 조령리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생선국수가 유명하다. 쏘가리, 동자개(빠가사리), 메기 등 민물고기를 통째로 두 시간쯤 삶은 후, 갖은 양념과 향긋한 채소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음식으로 시원하면서도 칼칼하다.
◇복고 감성, 삼국유사군위휴게소(상주영천고속도로 상주 방면)
삼국유사군위휴게소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지은 고장(군위 인각사)임을 강조한 명칭이다. 2017년 영업을 시작한 최신 휴게소지만, ‘복고’ 감성으로 개성을 살렸다.
휴게소 외관은 평범하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1960~70년대 분위기에 어리둥절해진다. 내부에 포장마차와 객차가 버티고 섰으니 뭔가 싶은데, 식사와 휴식을 위한 테이블이다. 커피 매장에는 ‘장미다방’이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맞은편 벽면의 ‘고교 얄개’ ‘웃고 사는 박서방’ 같은 옛날 영화 포스터도 반갑다. 이외에도 주번이나 당번이 차던 완장, 가로등 켜진 나무 전봇대, 쇠사슬로 묶어 놓은 자전거, 구식 펌프를 매단 음료수대 등 센스 넘치는 소품에 가득하다. 검정 교복을 맞춰 입은 매장 직원들은 훌륭한 주연이다.
복고를 테마로 꾸민 휴게소답게 대표 먹거리는 ‘추억의 도시락 & 라면’이다. 보글보글 끓인 라면에 김치볶음, 멸치무침, 구운 소시지, 김, 달걀 프라이까지 담아낸 도시락이다. 뚜껑을 덮고 힘껏 흔들어야 제맛이다. 편의점인 ‘대신상회’에선 쫀드기, 라면땅, 강냉이 같은 추억의 먹거리도 판매한다.
영천 방면 군위영천휴게소는 ‘공장’을 테마로 꾸몄다. 콘크리트를 노출시키고 벽돌을 쌓아 음료수대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안전제일’ 마크가 선명한 작업복을 입고 근무한다.
◇알짜배기 ‘먹방’ 완주 이서휴게소(호남고속도로 순천 방향)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이영자의 활약 덕분에 ‘먹방’으로 뜨는 휴게소가 늘고 있다. 여기에 완주 이서휴게소를 빼면 섭섭하다.
인기 메뉴인 라면과 우동은 2,900원으로 가성비가 으뜸이다. 라면은 튀기지 않은 생면을 사용해 시원하고 깔끔하다. 전주비빔밥전문점의 대표 메뉴인 ‘명품애호박국밥’과 ‘명품꼬막비빔밥’은 올봄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가 주관한 휴게소 대표 음식 선발대회에서 각각 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명품애호박국밥은 감칠맛 나는 얼큰한 국물이 포인트다.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큼직하고 두툼하게 썰어 넣어 보기에도 푸짐하다. 꼬막과 신선한 채소가 어우러진 명품꼬막비빔밥은 상큼한 유자청 고추장이 신의 한 수다. ‘2019 전국 휴게소 대표 명품 음식(EX-FOOD) 20선’에 선정됐다.
양이 많은 여행객에게는 영양밥 셀프 코너가 제격이다. 흑미밥, 현미밥, 귀리렌틸콩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배추 겉절이와 김치도 셀프 존으로 운영한다. 이서휴게소는 휴게소 최초로 도정기를 도입해 매일 두 차례 벼를 찧는다. 갓 나온 쌀은 4kg 단위로 판매도 한다.
휴게소 야외에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를 주제로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화장실 입구에도 콩쥐와 두꺼비가 있다. 이야기 첫머리에 ‘전주 서문 밖 30리’라고 소설의 배경이 나오는데, 완주군은 이서면 은교리 앵곡 마을로 추정하고 있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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