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하며 쓰레기 줍고 재활용품 전시ㆍ공연 축제… 제주도 환경 지키는 사람들
“제가 제주 사람이지만 바깥에서 바다를 바라봤을 때는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파도타기(서핑)를 하려고 바다에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에 역겨움이 느껴졌고 상처받은 바다를 위해 나부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지인 몇 명과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참가자가 모였어요.”
제주도 주변 바다 정화 활동을 펼치는 비영리단체 ‘세이브제주바다’의 리더 역할을 하는 한주영씨는 3년 전 서핑을 즐기려고 김녕항 근처 바닷속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나쁜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주의 바다를 더 잘 즐길 수 있게, 좀 더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바다 정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페이지 등 오직 SNS로 홍보하는 것이 특징.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미리 공지된 시간과 장소에 빈손으로 오면 된다. 한주영씨는 “참가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갑, 집게, 포대, 조끼는 인근 동, 읍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준비한다”며 “대신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자 물, 간식은 각자 챙겨 오게 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2~3시간 모은 쓰레기는 읍, 면에서 직접 수거해 간다.
행사는 지금까지 49회 진행했는데, 매회 평균 30~40명씩 총 1,500명 가까이 참가했다. 한씨는 “가족, 동아리 친구, 직장 동료 등 다양하다”며 “제주 도민들뿐만 아니라 워크숍을 오는 직장인 다른 지역 사람들도 찾아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사상 최악의 쓰레기 상황에 처한 제주 곳곳에서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지고 있다. 갖가지 프로젝트와 행사가 열리고,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제주 지키기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비영리단체나 모임들이 ‘환경보호=쓰레기 줍기’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일반인 누구나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로 문화 예술 활동을 즐겨보자
‘재주도좋아’는 제주 쓰레기 문제를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문화, 예술 활동으로 풀어 보고자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바닷가를 걸으며 버려진 물건을 줍는 ‘비치코밍(beach-combing)’으로 통해 모은 쓰레기로 갖가지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단순한 쓰레기 재활용을 넘어 디자인, 실용성을 가미해 더 높은 가치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작업이다. 운영진인 회원 신화정씨는 “쓰레기 문제는 즐기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오랫동안 꾸준히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 뒤 “자신이 직접 주운 쓰레기로 작품을 만들어 봄으로써 바다 쓰레기의 심각성을 몸소 느낄 수 있게 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6명의 운영진 중 신씨를 제외한 5명은 2012년 5월 해녀 학교 동기생 인연으로 처음 만났다. 이들의 운명은 같은 해 9월 해녀 학교 수료 기념으로 놀러 갔던 우도에서 바뀌었다. 최윤아씨는 “쓰레기도 줍고 바다에서 놀다 오자고 준비해 간 포대가 30분 만에 쓰레기로 다 채워졌다”며 “우도는 유명 관광지라 정리 정돈이 어느 정도 돼 있겠지 싶었는데 (쓰레기 오염) 상태가 심각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영상 제작자 등 직업도 다르고 출신 지역도 다르지만 바다에서 놀기 좋아하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은 우도 여행 이후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쓰레기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았다. 제주도의 ‘빈집 프로젝트’에 응모해 공간을 확보했고, 현대자동차그룹이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H-온 드림 오디션’ 등에 참가해 활동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또 음악가, 무용가, 작가 등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비치코밍 축제’ 등 갖가지 공연, 전시 등을 선보였다.
또 매년 여름 전국의 젊은 예술가를 선발해 숙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대신 이들이 제주를 주제로 자유롭게 작품 구상을 한 뒤 대중에게 그 결과물을 발표하도록 하는 ‘아트 레지던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지난해까지 약 70팀 100명 넘는 작가가 거쳐 갔다. 신씨는 “작가들이 전국에서 강연, 공연, 전시회 등을 통해 비치코밍을 소개하고, 제주를 비롯한 바다 쓰레기 문제에 대해 일반인과 고민을 함께 나눈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며 “현재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단체들이 다양한 비치코밍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과 쓰레기 줍기를 접목한 바이클린 프로젝트
푸른바이크쉐어링은 2017년부터 자전거 여행과 쓰레기 줍기 활동을 접목시킨 ‘바이클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형찬 대표는 “해안도로 등 제주 곳곳을 자전거로 여행하다 쓰레기가 많은 곳에 멈춰 서 함께 쓰레기를 줍고 다시 자전거로 나머지 여행을 하는 것”이라며 “자전거를 타면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쓰레기가 보이게 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쓰레기를 줍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제주로 여행 오는 젊은 층과 전국에서 수학 여행 오는 학생들의 호응이 좋다고 한다. 환경 보호가 거창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쓰레기 줍기부터 나서면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제주개발공사, 플라스틱, 캔 넣으면 현금 받는 수거기 보급
제주 대표 기업이자 국내 생수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다수를 만드는 제주개발공사도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손잡고 페트병 자동 수거 보상기 ‘나한티폽서’ 보급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누구나 쓰고 남은 플라스틱 통(5포인트), 캔(10포인트)을 기계에 넣으면 지정된 계좌를 통해 현금으로 보상받는다. 플라스틱과 캔은 기기에서 곧바로 10분의 1 크기로 압축되기 때문에 기존 재활용과 비교해 훨씬 쉽고 빠르게 재활용이 이뤄진다. 지난해 사려니숲길을 포함해 관광지 4곳에 설치한 뒤 주민 반응이 좋아 이달 중 제주국제공항 등에 12개를 추가로 놓기로 했다. 또 제주도의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일반인의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 방법을 찾기 위한 창의 사업 공모전인 ‘내가 GREEN 제주 소셜 리빙 랩’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제주=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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