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기업인들의 좌충우돌 4박5일 라오스 여행기
갑자기 불이 나갔다. 정전이었다. 라오스 최대의 쇼핑몰인 ‘달랏사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일요일 아침,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는 여성기업인 7명과 함께 라오스 여행의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한 즈음이었다. 전기가 나간 그 시각, 일행은 라오스의 명물인 머리 감겨주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전기가 나갔는데도 미용실 직원들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전자 부품 도색 공장을 운영하는 이영자씨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천하태평이야? 나 같으면 당장 한전에 달려간다. 라오스는 라전인가?”
‘라전’이라는 대목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라오스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배터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메콩강을 통한 전력생산이 활발하다. 그 많은 전기의 80%가 태국과 베트남 등으로 수출되고 국내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20%를 밑돈다. 그마저도 송배선이 불안해 심심찮게 정전을 일으킨다.
뜻밖의 상황은 다음 순간이었다.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복도에 작은 불들이 하나둘 켜졌다. 가게 점원들이 각자 지니고 있던 손전등으로 가게를 덮친 때 이른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기자가 손전등을 촬영하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 순간 진열대 앞에 섰던 점원이 활짝 웃어 보였다. 잠깐 혼동스러웠다.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손전등인지, 아니면 어린 점원의 미소인지.
미용실에 앉아 20분 넘게 전기를 기다리다 결국 몇몇은 머리를 말리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태국 직원이 “룰룰룰!”한 이유
달랏사오를 빠져나와 중국계 자금으로 세운 라오스 유일의 백화점인 ‘비엔티안 센터’로 향했다. 그냥 둘러보고 나올 계획이었으나 일행을 쇼핑의 세계에 빠뜨린 일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 원단으로 만들었네!”
의류가 몰려있는 2층에서였다. 원단 제조업을 하고 있는 류기자씨가 본인 공장에서 만든 원단을 발견한 거였다. 류씨는 올해 미얀마에 60억 정도의 원단을 수출했고, 그 원단으로 만든 옷이 라오스 최고급 백화점에 납품된 거였다. 나름의 애국심까지 발동해 7명의 여성기업인 모두 예쁜 드레스 한 벌씩 구매했다. 동료 기업인, 나아가 지역 섬유산업에 대한 이심전심의 응원이기도 했다.
“자식 같은 원단들이지요. 사업 안 해보면 자기 제품에 얼마나 정이 가는지 몰라요.”
그날 밤, 숙소에서 저녁 식사 후에 가진 티타임은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들의 말마따나 “국내 산전수전에서 해외 공중전”까지 각자 20~30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다양한 사연들이 새벽까지 ‘출하’됐다. 출발은 느닷없이 이날 여행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던 류기자씨의 경험담이었다.
“하루는 태국 출신 직원이 ‘룰룰루울!’ 하면서 사장실에 뛰어오는 거야.”
허겁지겁 달려가는 직원을 뒤따라 가면서 ‘룰이 뭐야’ 하고 생각했다. 현장에 가서야 뜻을 알았다. ‘불’이었다. 어눌한 발음에 다급한 마음이 겹쳐 ‘불’이 ‘룰’로 비틀어져 튀어나온 것이었다.
짧게는 십수년 가까이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한 이들의 경험은 다양했다. 자존심 강한 베트남인, 이해타산에 밝은 태국인들, 평소엔 온화하지만 욱하는 성격이 있는 미얀마인들까지 중소기업의 생산현장은 말 그대로 다국적이었다. 여성 기업인들에게 라오스인들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정전 상황에서 보인 태평한 표정도 그렇거니와 전체적으로 무기력해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에 온 동남아 사람들도 잘 가르치면 부지런해지는 것처럼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활기가 돌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가장 후한 점수를 준 사람은 류기자씨였다. 그는 “라오스인들이 갈대로 만든 공예품을 보면 손재주가 있는 것 같다”면서 “봉제 부문에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건설 자재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손명숙씨는 라오스 농업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올 때 경작되지 않은 땅이 많아 보였다고 했다.
“제가 라오스에서 사업을 한다면 드론으로 씨를 뿌려서 대농장을 만들 겁니다. 4모작이 가능한 데다 땅도 비옥해서 분명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치원복을 생산하는 황윤정씨는 “동남아의 경제성장률이 높고 젊은 부부들이 많은 만큼 유아교육과 관련된 사업을 해보고 싶다”면서 “지금까지 베트남 등에 공을 들였는데, 이제 관심목록에 라오스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업종에서 기업을 운영한 이들답게 각양각색의 아이디어가 흘러나왔다. 다음날 일정을 잊고 새벽까지 티 타임이 이어졌을 정도로 대화가 후끈 달아올랐다. 전체적으로 변화의 필요성과 함께 높은 잠재력과 가능성에도 후한 점수를 줬다.
라오스의 새마을운동, 삼상정책
다음 날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라오스인들을 만났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 건설 현장에서였다. 벽과 지붕만 세워놓은 건물 안에 라오스인 가족이 생활하고 있었다. 공사를 이끌고 있는 제인내 라오J브라더스 대표에 따르면 건설 인부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공사 현장에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면서 건축일을 하는 것이 라오스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인부들이 폭우와 건설 자재 부족 등의 이유로 쉬고 있다고 했다. 급한 마음은 오로지 한국 야구인들과 봉사자들의 몫이었다. 제 대표는 “야구장 건설은 이만수 감독님을 비롯해 라오J브라더스 멤버들과 한국인 봉사자들이 진행하고 있다”면서 “라오스 정부는 원조가 들어와도 당장 필요한 도로 공사와 전기 배선 작업에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제 대표의 말대로 공사비가 가장 큰 난관이다. 한국 기업의 후원(3억원)에 이 감독 등이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1억여원을 더해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력이나마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도울게요.”
설명을 들은 후, 건설 현장에 익숙한 손명숙씨가 제일 먼저 말을 끄집어냈다. 손씨의 회사는 건축 자재와 관련된 특허를 70개나 보유하고 있다. 건축 자재 등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재고 창고를 뒤져 라오스에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운송편으로 보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가구 제작을 하고 있는 허연옥씨는 건물만 지어 올리고 있을 뿐 안에 넣을 가구가 하나도 없다는 말에 “재고가 있으면 희망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나연씨는 “운동과 가장 연관이 있는 스포츠영양식품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유명 스포츠인들을 모델로 쓴 일이 많아서 야구인들과도 인연이 깊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CEO 모두 이만수 감독과 라오스 야구팀을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제 대표는 “야구장이 건설되면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땡볕 아래 몇 시간씩 훈련하는 야구 선수에게 보다 효율적인 훈련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을뿐더러 한국 중고 야구팀의 전지훈련이나 국제대회를 받을 수 있을 것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야구장과 야구를 통한 한국과 라오스의 우호와 친선”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질레트가 한국에 야구를 소개한 이후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민족정신을 드높이는 장을 자주 마련되었고, 100여년이 흐른 지금은 한국 야구의 응원전이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을 만큼 한국인의 열정을 대변하는 종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 야구의 역사와 열정을 라오스인의 가슴에 이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100년 전의 질레트와 그의 야구팀을 기억하듯 라오스도 한국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또렷하게 새길 것입니다. 더불어 지금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는 어린 선수들이 야구인만의 뜨거운 열정을 품고 경제와 산업, 정치,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자리를 잡고 이 나라의 리더로 성장한다면, 라오스가 한국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멀리 보면 지금의 야구 전파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앙에 가장 확실한 대한민국의 우방을 만드는 기초 작업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에 대한 라오스인들의 호감도는 생각보다 높다. 야구인들을 비롯해 한국의 기업인들이 한국의 노하우와 열정을 전하고 싶은 만큼 라오스인도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한다. 야구장을 방문한 다음 날 만난 박창은 코트라 비엔티안 관장은 “라오스 관료들은 단순 원조와 기술을 넘어 한국인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기 원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나라가 라오스를 원조하고 있지만 한국은 독특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이 라오스처럼 최빈국이었다가 미국과 일본 제품과 품질을 겨루는 수출강국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에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2014년에 시작한 읍면군 단위의 현대화 사업인 삼상정책(라오스 농촌개발정책)도 한국과 라오스 간의 교류의 한 예다. 박 관장은 “삼상운동에도 한국의 마인드와 노하우가 적극 반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 기업인들은 “기업인 자격으로 선진국부터 후진국까지 다양한 나라의 산업현장을 다녀봤지만 한국 사람처럼 부지런한 국민들은 찾기 힘들더라”면서 “특히 가난한 나라일수록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각오로 악착같이 일어선 한국에 참고할 점이 많을 것”이라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라면, 김치 마싯써요!”
4일간의 투어에서 마지막 일정은 다시 달랏사오였다. 첫날에 방문한 머리 감겨주는 미용실을 거쳐 시계, 보석, 다양한 조각품과 의류가 그득하게 진열된 쇼핑몰 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영자씨가 유럽에서 산 가방끈이 갑자기 끊어지는 바람에 5달러짜리 ‘최고급’ 가방 2개를 샀고, 나무를 깎아 만든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코끼리도 두어 마리, 가격이 100배 가까이 뻥튀기되곤 하는 상황버섯도 1~2만원 단위로 넉넉하게 구매했다. 작은 쇼핑몰이었음에도 자세히 보니 괜찮은 물건이 꽤 있었다. 일정을 변경해 쇼핑 시간을 늘렸다. 쇼핑 중간에 커피숍에서 잠시 쉬는 시간도 가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카페인을 충전하며 잠시 유리벽 너머의 시장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기 앉아서 가만히 살펴보니까 시장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렇지 나름대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 같아.”
누군가 혼잣말처럼 던진 말에 일행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중 2/3 이상을 30도가 넘는 더위와 싸워야 하는 나라에서 무기력이 습관처럼 굳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라오스의 리더들이 ‘기적의 경제’를 일군 한국인들에게 그 특별한 자극을 얻고 싶어 한다. 한국과 라오스가 보다 특별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일 것이다.
쇼핑의 마지막 순서는 시계와 보석 가게가 늘어선 2층이었다. 여행 첫날 갑자기 불이 꺼지는 바람에 구렁이 뱃속처럼 껌껌해졌던 공간이었다. 작은 조명 옆에서 정전을 무색하게 할 만큼 환하게 웃던 어린 점원은 없었다. 대신 퉁퉁한 아주머니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에게 일행이 한국에서 왔다고 알려주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면, 김치 마싯써요(맛있어요)!”
비엔티안(라오스) =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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