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어디로’ 전문가 진단… “김현종의 ‘업그레이드 기회’ 보단 위기로 봐야”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 뒤 미국 정부는 거듭 “실망했다”고 했다. 동맹국으로선 이례적 반응인 터라,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신호로 해석됐다. 그러나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한미 관계 업그레이드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70년 한미동맹’은 청와대 평가 대로 도약 기회를 맞은 걸까, 아니면 위기에 처한 걸까.
전문가들은 김 차장 발언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반미(反美)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본색’이라는 미국 워싱턴 주류의 의심과 불신이 이번 일을 계기로 크게 부풀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국내 여론만 신경 쓰지 말고 워싱턴으로도 시선을 돌려 신뢰 회복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청와대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내려오는, ‘수직 계열화한 안보 공조 구도’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취지라고 한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3일 “김 차장이 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한 건 청와대가 미국과의 직접 소통 구도를 지향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기회’보다는 ‘위기’에 가깝다는 평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최근 한미동맹 균열 조짐은 언젠가는 불거질 수밖에 없었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방아쇠를 당긴 것일 뿐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동맹에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말은 현 상황이 불만이라는 뜻”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동조하지 않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이 지소미아뿐인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정가의 격앙된 분위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스틱 내셔널리즘(대중영합적 민족주의) 정부’라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면서 “동맹의 제도적 기반이 당장 와해되지는 않더라도, 제도를 운용하는 양측 인식의 괴리가 엄존하는 만큼 불편함이 쌓여 가고 관계 관리도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한미동맹 위기의 핵심 배경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 상실’이다. 차두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우리는 미국과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 투명성을 확보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입장은 일치한다’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미국의 뒤통수를 친 격”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미국 입장에선 중국 견제가 우선 순위이므로 노골적으로 한국을 배제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호의를 베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동맹을 다시 다질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국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동맹 가치를 도외시한다는 미국의 의심을 지우는 게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정치학자는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는 국내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다”며 “국내 여론에 절대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는 특단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한국 대법원의 일본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분쟁과 지소미아를 통합적으로 논의할 한미일 3국 고위급 대화를 정부가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3국 관계가 이렇게 된 이상, 한일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할 것을 미국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이 안보 중재를 시도하면 한일간 역사 문제도 함께 협의할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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