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로 중국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는 이른바 ‘포치(破七)’가 현실화한 이래 위안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포치에 진입한 8월 한 달 간 위안화 가치는 2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환율 상승)했다. 위안화 절하는 다분히 미국의 관세 인상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꺼내든 대응책이지만, 위안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중국 경제에도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해외 자본 유출을 초래할 수 있고, 장기적으론 위안화 국제화 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3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ㆍ달러 고시환율을 1달러당 7.0884위안으로 상향설정(전일 대비 0.0001위안)한 이날 역내 시장환율은 장중 2008년 2월 이래 가장 높은 7.18위안까지 올랐다. 인민은행은 매일 기준환율을 고시하고 시장환율이 고시환율 대비 상하 2%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외환거래를 허용한다.
현재 위안화 시장환율(2일 기준)은 8월 초 대비 3.7% 이상 높다. 위안화는 시장환율 기준으로 8월5일, 고시환율 기준으론 그달 8일에 각각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섰다. 위안화 환율이 포치를 기록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인 2008년 5월이 마지막이다. 8월 한 달 간 위안화 가치 하락 폭은 월간 기준으로 중국 정부가 공식ㆍ비공식 환율을 통합하면서 위안화 가치가 50% 절하된 1994년 1월 이래 최대치다.
시장에선 중국이 사실상 환율 통제국이란 점을 들어 포치가 미국의 대규모 관세 부과에 따른수출 부담을 줄이려는 중국 당국의 정책적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위안화 가치 하락은 무역분쟁 여파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미국의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추가 절하도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안화 시장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자마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보복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경영자문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중국 수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지난해 대비 2% 하락하면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상품뿐 아니라 다른 상품의 수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선 마냥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만은 없다. 2015~16년 때처럼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을 우려한 해외 자본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외화 표시 채무를 지고 있는 자국 기업들의 부담도 커진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달러화로 표시된 채권을 주로 발행하는 중국 부동산 기업들이 특히 위안화 절하로 부채 비중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실제 급격한 자본 유출은 일어나지 않은 상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자본이탈 규모는 2016년 연간 유출액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2015~16년 사태 이후 해외 송금 및 부동산 구매의 규제를 강화해온 점, 중국이 최근 금융시장 개방 조치를 가속화한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위안화 절하는 중국 정부의 역점 과제인 ‘위안화 국제화’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제 지급결제에 사용된 통화 중 위안화의 비중은 1.81%로, 대표적 기축통화인 달러ㆍ유로ㆍ파운드ㆍ엔화는 물론이고 캐나다달러(1.82%)에도 뒤졌다. 주로 홍콩을 거치는 위안화 거래가 홍콩 사태로 줄어든 탓도 있지만,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결제수단으로서 매력이 감소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위안화 절하가 중국 경기 둔화의 징조라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30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무역분쟁 우려가 해소되더라도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위안화 절하 압력 때문에 위안화 가치는 달러당 7.2위안 수준으로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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