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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디플레 수렁 빠질라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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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디플레 수렁 빠질라 ‘경고음’

입력
2019.09.04 04:40
수정
2019.09.04 17:2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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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소비자물가 작년보다 0.04% 하락…저성장 이어 저물가 고착화 우려

물가 상승률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물가 상승률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올 들어 줄곧 0%대 저공 비행을 펼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급기야는 사상 첫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가집계 때보다 더 떨어진 1.0%에 그쳤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일시적 현상일뿐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경기 둔화 속에 상품ㆍ서비스 가격이 지속 하락하는 이른바 ‘D(디플레이션)의 공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미ㆍ중 무역갈등에 더해 신산업 부재, 급속한 고령화까지 대내외 악재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저물가ㆍ저성장 고착화 우려는 한층 짙어지는 양상이다.

◇사상 초유 마이너스 물가

통계청이 3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104.81ㆍ2015년=100 기준)는 1년 전보다 0.04% 하락했다. 반올림한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를 기준으로 하는 공식 물가상승률은 0.0%지만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한 셈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 이하를 기록한 건 1965년 관련 통계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올 들어 7개월 연속 0%대 상승률을 보이다 결국 사상 유례없는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마이너스 물가는 국제유가와 농축산물 가격 하락 속에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바다. 작년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농산물값이 치솟았던 영향으로 지난달 농ㆍ축ㆍ수산물값은 1년 전보다 7.3%나 하락하면서 전체 물가를 0.59%포인트 끌어내렸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가격도 작년보다 6.6% 하락했다. 기획재정부는 여기에 “유류세 인하 조치와 건강보험, 무상급식 등 복지정책 확대 효과도 물가상승률을 0.2%포인트 하락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나친 저물가는 오히려 경기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한국은행이 물가안정목표를 ‘2% 내외’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마이너스 물가는 ‘적정 수준’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여기에 모든 물가요인을 포괄하는 물가지수인 ‘GDP디플레이터’는 아예 최근 3분기 연속 하락하며 지난 2분기엔 2006년 1분기(-0.7%) 이래 가장 낮은 -0.7%를 기록했다. “일시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더 떨어진 성장률

성장세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을 지난달 속보치 1.1%에서 1.0%로 하향 조정했다. 속보치 집계에서 빠졌던 6월 지표가 예상보다 더 안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분기 성장률 1.0%는 작년 1분기(1.0%) 이후 5분기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비교 대상인 올해 1분기 성장률(-0.4%)이 워낙 낮았던 덕이 켰다. 실제 1년 전과 비교한 2분기 성장률(2.0%)은 올해 1분기(1.7%)를 제외하면 2015년 2분기(2.0%)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1, 2분기를 합친 상반기 성장률(전년동기 대비)은 1.9%에 그친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연간 2.2%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하반기에는 2.4%를 성장해야 한다. 각각 3분기와 4분기 0.9~1.0%씩(전기 대비)은 성장해야 가능한 수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수출은 7월(전년동기 대비 -11.0%)과 8월(-13.6%)에도 후퇴를 거듭하며 당장 하반기 전망(2.0% 증가) 달성조차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한은 통화정책의 주요 잣대인 잠재성장률(2.5~2.6%)과 실제 성장률 간의 차이가 더 벌어지면서, 한은이 내달 재차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거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일시적”이라지만

저성장 국면에 유례없는 마이너스 물가까지 겹치자 재계와 학계 등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와 한은은 “일시적인 현상”임을 계속 강조한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날 한은과 ‘거시경제협의회’를 갖고 “물가상승률 급락은 농산물 및 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 측 요인과 복지정책 확대 효과 등에 주로 기인했다”며 “디플레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기저효과가 완화되는 연말부터는 물가가 0% 중후반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일시적 요인 등으로 가격 변동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지난달 0.9% 상승한 점을 봐도, 디플레 우려는 근거가 약하다는 게 정부와 한은의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유독 낮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1.8%), EU(1.4%), 중국(2.8%), 영국(2.1%), 독일(1.1%) 등 주요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0.6%)보다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6월 평균 물가상승률(2.1%) 역시 한국(0.7%)을 크게 웃돌았다.

때문에 최근의 저물가에 소비자들의 심리 위축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재의 저물가ㆍ저성장 상황 자체가 디플레에 준하는 위기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92.5)가 2017년 1월(92.4) 이후 가장 낮았던 건, 국민들이 현 상황을 경기침체로 여겨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물가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은 경기 침체로 수요가 부진한 요인도 크다”고 진단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공급 측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부분도 있으나, 0%대 물가가 장기화하는 점은 소비심리 위축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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