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좋아하던 TV프로그램 중에 ‘진실게임’이 있었다. 질문에 해당하는 사람을 출연자들이 골라내면, 과연 맞혔는지 확인해 보는 게임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마지막에 “진실의 종아, 울려라!”라고 모두가 외치고 나면, 정답 여부에 따라 출연자들 사이에 희비가 갈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이 프로그램의 묘미였다. ‘진짜’가 가짜 흉내를 내기도 하고 ‘가짜’가 진짜인 척하면서, 시청자들도 함께 속기도 하고 맞히기도 하면서 묘한 재미를 끌어내던 프로그램이었다.
이제 대학도 “진실의 종”을 울리라는 사회의 압력을 많이 받고 있다. 대학들이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가 얼마나 현 대학교육에 만족하고 있는지를 의식하며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데까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교육수요자의 질문은 간단하다. 과연 대학교육이 매 학기 수백만 원 등록금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가? 여기서 ‘값어치’를 취업에 둔다면, 분명한 것은 여전히 대학을 졸업해도 원하는 데 취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도 취업 관련 상담 기능을 강화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강단의 많은 학자들은 대학이 취업을 위한 특정 분야 기술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인생을 길게 보고 의지할 수 있는 교양과 이론을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대학에 묻는다. 그렇다면 그런 교양을 왜 온라인이 아니고, 오프라인 대학에서 비싼 돈을 주고 배워야 하느냐고. 정말 그런 목표를 위해 대학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대학을 가려고 애쓸 필요가 있는 거냐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진학을 둘러싼 논란을 뒤집어 보면 우리에게 과연 대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온가족이 입시모드로 전환해 초조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경쟁은 학부모나 학생이나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전쟁이라고 한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에 들어가면, 과연 대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지식과 교양을 제공하고 있는가?
지난 7월 4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째도 AI(인공지능),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했다고 한다. 기술의 방향이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엔진에서 모터로, 화석연료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 그리고 기계에서 인공지능으로 넘어가고 있다. 정보화 선두그룹에서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온 우리에게 스마트 기술과 AI는 기존 시스템을 다 흔들어야 적응 가능한,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콘텐츠를 21세기를 살아갈 학생들이 듣고 있다는 유머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농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재붕 교수가 얘기하는 ‘포노 사피엔스’와 고(故) 이민화 교수가 얘기했던 ‘호모 모빌리언스’는 TV와 PC에 의존했던 인류가 아니다. 그들의 삶은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의해 완전히 재구성되고 있다. 스타는 더 이상 ‘무한도전’이 아니라 ‘보람튜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학도 10여년째 묶여 있는 등록금을 비롯해 많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교육소비자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진실의 종을 울려야 한다. 우리는 가짜가 아니고 진짜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전공과 학과의 벽을 넘고 학생 본위로 모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게 대학입시를 놓고 고민하는 교육수요자에 대한 예의다. 이미 대학 정원은 지원자 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수요자 주도 시장의 도래다. 대학은 지금껏 콧대 높은 공급자였다. 교육수요자들이 그들의 텅 빈 지갑을 대학 학사학위라는 쇼핑백의 내용물과 번갈아 보며 고민하기 시작할 때, 대학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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