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포도 재배에서 와인 양조, 유통 과정까지 보여주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 위키미디어

1970년대, 우리 집 가전제품 대부분은 ‘미제 이모(수입품 보따리상)’에게 구입했다. 특히, 일제 코끼리표 밭솥은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 가전제품은 전기밥솥은 물론이고 와인셀러까지 모두 국산이다.

와인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초기에는 와인을 수입만 하다가 차츰 포도농사법과 양조법을 익히더니 이내 와인을 만들어 수출까지 하는 사례를 접한다. 문명이 시작된 곳,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도 이런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기원전 3500~3000년 즈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문명이 시작되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알려진 이곳은, 기후와 토양 등 자연 조건이 밀이나 보리 농사에 최적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일찍이 잉여 농산물로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 맥주는 종교의식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음료였다. 빵과 함께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등 통화로도 쓰였다고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새긴 원통인장으로 찍어낸 점토판. 맥주는 빨대(갈대 대롱)로, 와인은 잔으로 마시고 있다. 위키미디어

기원전 3200년쯤, 이들보다 3,000년이나 앞서 와인을 빚은 북쪽의 트랜스코카시아 지역에서 ‘붉고 이국적인 술’이 메소포타미아에 전해졌다. 맥주보다 알코올도수가 높아 신에게 더 빨리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신성한 피 같기도 한 신비로운 이 술은 메소포타미아 상류층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퍼져 나갔다. 이 세련되고 매혹적인 술은 산맥 너머에서 온 것이라 해서 ‘산간맥주’라고 불렸다.

당시엔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아, 산간맥주 즉 와인을 갈대나 나무로 엮어 만든 배(뗏목)에 실어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따라 들여왔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한 번 사용한 배는 다시 쓸 수 없어서 해체하거나 싼값에 팔았다고 한다. 물론, 와인값엔 뱃값이 포함됐다. 완전 수입품인 데다가 특정 계절에 한정된 양만 맛볼 수 있는 이 값비싼 음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었을 테다.

메소포타미아는 자연환경이 포도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다. 포도나무는 물빠짐이 잘되는 다소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데, 메소포타미아는 기후가 너무 따뜻했고 토양은 기름졌기 때문이다. 와인을 만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계속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기전 3150년경 이집트 파라오인 스콜피온 1세의 무덤에서 발견된 와인 항아리. 미 펜실베이니아대 펜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한편,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에도 와인이 소개됐다. 이집트인들도 처음에는 와인을 수입했다. 기원전 3150년 무렵 파라오였던 스콜피온 1세의 무덤에서는 와인 항아리 300여 개가 발견됐다. 분석해보니, 항아리 속 성분이 이집트에서 1,500㎞쯤 떨어진 레반트 지역(지금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일대)의 것이었다.

기온이 너무 높고 건조하며 사막지대가 많은 이집트 역시, 나일강 유역과 오아시스 지역을 제외하고는 포도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는 달랐다. 이들이 누구이던가.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았는가.

기원전 3000년~2500년쯤, 이집트인들은 물을 끌어다 관개시설을 갖추고 포도농사를 지었다. 이들이 남긴 그림과 상형문자를 보면, 포도넝쿨이 아치형 덩굴시렁을 타고 올라가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리게(퍼걸러 방식) 포도를 재배했다. 통에 포도를 넣고 발로 밟아 으깨어 즙을 내고 남은 포도껍질 등을 짜냈는데, 이 방식은 현대 양조법과 원리상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짜낸 포도즙을 발효시킨 뒤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닫고는 진흙을 덧발랐다. 거기에 포도밭 위치, 생산자 이름, 양조 연도, 품질이나 스타일 등을 담은 정보를 기록했다. 말하자면 최초의 와인 라벨인 셈이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 오른쪽부터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퍼걸러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 즙을 내고, 남은 포도껍질 등을 짜내고 있다. 위키미디어

1922년에는, 기원전 1348년쯤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와인 항아리 26개(깨진 것까지 36개)가 발굴됐다. 라벨을 보니 모두 나일강 하구의 것이었다.

이처럼 이집트의 와인 생산자들은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고 기어이 와인을 만들어냈다. 자연 환경은 상대적 조건일 뿐 절대적 제약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만든 와인을 그리스의 여러 섬들에 수출했다. 그리스는 포도농사에 최적인 자연조건을 가진데다 이집트로부터 전해진 선진 양조기술 덕분에 이후 와인산업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그 많던 ‘미제 이모’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팔까. 동해 건너 섬나라 사람들이 알까마는, 중국에는 한국산 전기밥솥을 파는 보따리상이 많다고 한다.

시대의창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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