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하고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의 반복(드라마 ‘멘도롱 또똣’ㆍ2015)이란 평을 받으며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2년 뒤에 재기를 노렸지만,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의 큰 부상과 컴퓨터그래픽(CG) 오류 등 후진적 방송 제작 시스템으로 인한 문제(‘화유기’ㆍ2017)가 연이어 곪아 터졌다. 누구보다 발랄했던 두 작가의 ‘판타지 세계’엔 큰 멍 자국이 생겼다. 홍정은ㆍ홍미란(일명 홍자매) 작가에게 지난 3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비틀거렸던 홍자매 작가는 최근 다시 일어섰다. 두 작가가 대본을 쓴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시청률 12%(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화제 속에 1일 종방했다. 9회말 투 아웃 상황에서 역전 홈런을 친 것과도 같은 반전이었다. 드라마 종방 후 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드라마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사무실에서 만난 홍자매 작가도 “(작품 구상에) 고민을 많이 했다”며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써 보면 어떨까?’란 얘길 주고받기도 했어요. 결국 우리가 잘하는 걸 더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강렬한 캐릭터, 코미디, 귀신 소재 같은 것들이요. 우리의 장점을 더 강화하는 판타지 요소를 파고들었죠.”(홍미란)
두 작가가 ‘호텔 델루나’의 뼈대로 삼은 ‘귀신과 사람의 소통,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는 6년 전 ‘주군의 태양’에서 선보인 설정이었다. 두 작가는 ‘호텔 델루나’에서 ‘주군의 태양’의 성 역할을 변주해 예상치 못한 재미를 줬다.
‘주군의 태양’에서 주중원(소지섭)이 귀신을 보며 겁에 질린 태공실(공효진)의 방공호 역할을 한다면, ‘호텔 델루나’에선 정반대였다. 장만월(아이유)은 악령의 위협에서 구찬성(여진구)을 지킨다. 홍자매 작가는 장만월에 괴팍함과 1,000년 묵은 한의 슬픔을 조화롭게 녹였다. “여성 캐릭터의 강렬하고 독특한 변용에 능숙한 두 작가의 장점이 빛을 봤다”(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평가다.
“드라마는 조합의 예술이잖아요. ‘호텔 델루나’가 성공한 데는 제작 여건의 성숙이 큰 도움이 됐어요.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2010)를 찍을 때만 해도 CG가 부실했죠. 첫 회에만 CG가 나오고, 나중엔 신민아 배우가 인형처럼 꼬리털을 붙이고 연기했으니까요. ‘호텔 델루나’도 6년 전에 기획했지만, 호텔의 웅장한 세트와 CG가 따라주지 않아 기획을 포기했어요. 둘이 엉뚱한 상상을 많이 해요. 이젠 제작 여건이 따라주다 보니 그 엉뚱함이 자연스럽게 극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홍정은)
두 작가는 2005년 드라마 ‘쾌걸 춘향’으로 데뷔했다. 예능프로그램 작가 출신답게 “극뽁”(‘최고의 사랑’ㆍ2011) 같은 재기발랄한 유행어로 승부를 보던 두 작가는 이제 변했다. “‘호텔 델루나’에서 두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소설가 겸 드라마평론가 박생강). 드라마는 회마다 원혼을 달래고, 죽은 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꾸준히 환기한다.
홍자매 작가는 지난해 할머니를 여의면서 변화를 겪었다. “가까웠던 가족을 처음으로 보내면서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한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봤어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었어요. 세상은 불공평하고 신은 늘 강자의 편인 것 같잖아요. 다음 세상이 있다면 이 불공평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겁하게 현실에서 도피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호텔 델루나’가 작가 입장에선 위안을 줄 수 있는 정거장 같은 공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요.”(홍정은)
두 작가가 귀신 이야기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가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작가 생활을 3년 넘게 했어요. 시청자들의 귀신 제보를 극화해서 재연하는 형식이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사연이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귀신이란 소재의 극화에 관심을 뒀던 것 같아요. 어려서 ‘전설의 고향’도 즐겨봤고요.”(홍정은) “용서와 화해는 산 사람 사이에 주고받기가 쉽지 않아요. ‘네가 뭔데?’란 식으로 반감이 생길 수도 있고요. 죽은 사람이 용서할 때 그 저항이 좀 덜한 것 같아요. 작가로서 그래서 귀신 소재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홍미란)
두 작가는 별명처럼 실제로도 자매다. 홍정은 작가가 홍미란 작가보다 세 살 많은 언니다. 티격태격 싸움도 잦을 것 같지만, 두 작가는 ‘공동 창작’을 고수한다. 컴퓨터 한 대를 놓고 둘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대본을 쓴다. 두 작가는 한집에 같이 산다. 여느 유명 작가와 달리 두 작가는 보조 작가를 따로 두지도 않는다. ‘호텔 델루나’도 지난해 4월부터 대본을 쓰기 시작해 24시간을 함께 하며 지난달 완성했다. 서로 이견이 생기면 각자 화장실에 가 머리를 식히고 온단다. 두 작가는 “한 번도 공동 작업 외 혼자 대본을 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두 작가는 정모씨가 둘을 상대로 제기한 드라마 ‘화유기’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올 초 승소했다. 법으로는 이겼다고 하지만 ‘표절 의혹’이 두 작가를 따라붙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겁다”라고 했다. 우여곡절을 딛고 두 자매는 또 다른 모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남이시네요’(2009) 같이 가벼우면서도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물을 써 놨어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위기 때 ‘만약 우리나라에 노예제가 부활한다면?’이란 상상을 한 적이 있어요. 노예시장이 현존하고, 그곳을 탈출해 지하철에서 잡히는 황당한 설정을요. 여러 가능성을 좀 더 쉬면서 생각해보려고요.”(홍미란)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