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성, 통일성, 돌발성, 건강미, 휴머니즘.’ 전 세계를 매혹시킨 한류 경쟁력의 원천을 미학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유헌식 단국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달 31일 연세대 외솔관에서 한국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국인의 美(미)의식과 몸’이란 학술대회에서 ‘한류의 철학-다섯 가지 미학적 코드’를 발표했다.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은 콘텐츠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한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이다.
유 교수는 한류 열풍의 근본 요인으로 ‘즐거움’을 주목했다. 그는 발표문에서 “한류 콘텐츠는 구성적 측면의 ‘재미’와 정서적 측면의 ‘만족’을 모두 충족시키는 엔터테인먼트를 구현해 냈다”고 밝혔다.
제일 먼저 꼽은 한류 콘텐츠의 특징은 ‘개방성’이다. 유 교수는 부단한 외세의 침입 앞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세월을 살며 터득한 한민족의 유연함이 한류 콘텐츠에 녹아 들었다고 진단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기택(송강호)의 대사는 한민족 특유의 생존 우선 전략을 극명하게 드러내줬다는 평가다. 또 촬영 중간 극의 전개가 뒤바뀌는 한국 드라마의 ‘쪽대본’ 제작 방식 역시 시청자의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배가시켰다는 분석이다.
한류 콘텐츠가 무질서한 매력만 있는 건 아니다. 유 교수는 차이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통일성’이 한류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분석한다. 리듬앤블루스(R&B)와 랩, 힙합,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이질적 요소를 인정하고 연결시켜 시너지를 낸 경우다.
돌발성 또한 한류 콘텐츠의 ‘킬링’ 미학코드다. 방탄소년단이 선보인 춤은 태껸의 공격 동작처럼 예기치 못한 급작스러움을 수반하기에 역동적 매력으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삑사리의 예술’이라는 평을 들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 철학 역시 반전의 미학에 토대를 둔다.
이 밖에도 한국 드라마는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에 비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현저하게 낮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혔다. 한류 스타들의 깔끔하고 맑은 이미지에 열광하는 한류 팬들은 ‘청량한 건강미’에 매료됐다는 반응이다. 또 온후한 인간미와 휴머니즘은 한류 콘텐츠를 지배하는 주요 정서다. 유 교수는 일상의 모습을 공개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을 예로 들며 “사생활 노출에 극도로 예민하고 까다롭게 구는 할리우드 스타와 달리 한류 스타들은 대중과 격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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