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전 설치, 내구연한 넘겨
서울의 A 초등학교는 개학을 준비하다 비상이 걸렸다. 교내 97실에 설치된 에어컨이 전부 작동하지 않아서다. 더위는 여전한데, 아이들은 활동량이 많다. 수리기사를 불렀더니 “설치된 지 16년이 지나 부품 구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바꾸라”고 했다. 학교는 그럴 수 없었다. 교육청이 언제 바꿔줄 지 몰라서다. 최근 에어컨을 바꾼 주변 학교들을 수소문해 아직 버리지 않은 부품과 실외기 등을 구해다 겨우 수리를 끝냈다.
A 초등학교는 일부 이야기가 아니다. 2일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ㆍ경기 및 6대 광역시의 국공립 유치원(단설)ㆍ초ㆍ중ㆍ고등학교에 설치된 에어컨의 설치 연도를 조사한 결과, 2011년 이전에 설치된 에어컨이 5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에어컨의 절반 이상이 조달청이 정한 내구연한 9년을 넘긴 셈이다. 설치된 13년이 지난 에어컨도 12%나 됐다. 교체 예산이 부족한 탓에 올해 전체 구형 에어컨 중 교체 대상은 1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형 에어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냉방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전기료는 많이 드는 데 딱히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구형 에어컨 대부분이 설정 온도에 맞춰 계속 가동되는 정속형으로 설계된 탓이다. 최근 에어컨은 설정 온도에 도달하면 최소한의 힘으로 가동해 전기 소모를 줄이는 인버터 방식을 쓴다. 인터버는 구형보다 60% 이상 에너지를 아낀다. 더구나 온도에 맞춰 알아서 조절하는 인버터 방식은 정속형에 비해 훨씬 시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 학교 관계자는 "에어컨을 켜도 시원하지 않다는 민원이 들어와 냉매 교체 등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며 "에어컨 전기요금만큼은 교육청이 신청하는 대로 주기 때문에 민원을 막기 위해서라도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에어컨이라 고장이 잦은 것도 문제다. 이로 인한 ‘수리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다른 학교 관계자는 “하루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비어있는 교실로 학생들을 이동시킨 뒤 수리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수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큰 고장 같은 건 학교 자체 예산을 들이기도 한다.
에어컨 교체에 대해 교육청은 난색을 표한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올해 에어컨 교체 예산만 봐도 확보된 예산은 전체 구형 에어컨 25만1,000대 가운데 2만5,000여대 수준이다. 시스템 에어컨의 경우 천장 석면까지 교체해야 해서 관련된 예산이 추가적으로 든다.
한 교육청 시설담당자는 "내구 연한이 지났다고 곧바로 교체할 예산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우선 13년이 넘은 노후 냉난방기부터 교체하고 일선 학교에는 평소 운영에 신경을 써달라고 각별히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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