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서연방관구 연방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명 자체가 역사이고 이데올로기인 도시다. 제정 러시아가 스웨덴으로부터 옛 노보고르드공국의 저 춥고 황량한 늪지대를 빼앗은 이래,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대서방 군사요새(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구상했다가, 발트해 진출을 위한 거점 항구도시로 계획을 키웠다가, 아예 러시아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구상을 확장하면서 도시가 탄생했다. 그는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로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명명했다.
1703년 5월 광활한 늪지대에 말뚝을 박는 일부터 시작해서 1712년 제국 수도로 탈바꿈하기까지 만 9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농노와 스웨덴 전쟁포로들이 거기 묻혔다. 페테르부르크는 서구 문물의 관문이자 침략 방어의 전초기지였다.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 반독일 정서가 확산되면서 도시는 독일식 지명 대신 ‘페트로그라드’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얻었다. 4년 뒤 혁명 정부는 발트해를 통한 자본주의 세력의 기운으로부터 혁명의 정수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말해 안보를 위해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전했다. 혁명의 성지라고는 하지만 봉건 차르의 잔재가 남은 페트로그라드는 1924년 레닌 사후 레닌그라드가 됐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해체 직후인 1991년 9월 6일 원래 이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갔다.
중소 분쟁 직후인 1972년, 소비에트 러시아는 프리모르스키(연해주) 지방 주요 도시의 지명에서, 당시 널리 통용되던 중국식 이름들을 모조리 공식적으로 지웠다. 1860년 베이징조약 이전까지 청나라의 영토였던 해삼위(海参崴)는 이후 무조건 ‘블라디보스토크’여야 했고, 백력(伯力) 은 ‘하바로프크스’라는 공식 이름으로만 불리게 됐다.
볼고그라드의 옛 이름은 차리친(예카테리나 여제의 도시)이다. 스탈린 집권기인 1925년 스탈린그라드가 됐고, 그의 사후인 1961년 흐루쇼프는 도시의 이름을 볼가강변의 도시 볼고그라도로 바꿨다. 2차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나치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투로 기록돼 있다. 근년 들어 그 영웅적 반파시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라는 지명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고, 패권주의자 푸틴이 은근히 그 안을 지지한다는 외신 보도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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