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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예방의 설움

입력
2019.09.0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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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을 잘 할수록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에 예방은 종종 홀대받는다. 예방이 억울한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예방을 잘 할수록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에 예방은 종종 홀대받는다. 예방이 억울한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인 중 한 분이 대학의 상담센터장이다. 당장 병원에 가야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쇠약한 아이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지인은 걱정한다. 그런데 지인은 불만이다. 상담센터의 중요성을 학교에서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센터는 학생들이 큰 탈 없이 학교 생활을 하도록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 준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할수록 별일이 안 생기니 상담센터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학 예산이 팍팍한 요즘 예산 절감 1순위로 오르내린단다. 예산이 깎여 상담원과 상담 시간을 줄였다가 도움을 제때 못 받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학생이라도 생기면, 그때서야 상담센터의 중요성을 알고 예산을 늘려 준단다. 예방을 잘할수록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에 예방은 종종 홀대받는다. 예방이 억울한 이유다.

흡연 예방만 해도 그렇다. 흡연을 시작하면 니코틴의 중독성 때문에 끊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흡연자가 금연하도록 하는 정책보다 젊은이들이 흡연을 시작하지 않도록 하는 흡연 예방 정책이 비용 대비 효과가 더 크다. 그러나 흡연 예방의 효과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서 12~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트루스(truth) 캠페인’은 예외적이다. 흡연의 폐해를 담배 회사가 조작하고 기만했다는 내용을 담아 청소년들의 권위에 대한 반항 본능을 자극해 성공한 흡연 예방 캠페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캠페인 때문에 약 5년 동안 4만5000여명의 청소년이 흡연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의료비가 5조4,000억달러 절감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흡연자 수만 명이 담배를 끊었고, 흡연율이 몇 퍼센트 감소했다는 결과만큼 강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예방의 숙명이다.

예방을 높이 평가한 사람도 있긴 했다. 중국의 고전 ‘갈관자’에 따르면 편작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병도 낫게 해 주어 명의라 칭송받았다. 정작 편작은 자신의 의술이 두 형의 의술에 비해 보잘 것 없다고 했다. 첫째 형은 병이 발생하기도 전에 환자의 안색만 보고 병의 예방법을 알려주고, 둘째 형은 병 초기에 약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에게 근본적인 치료를 해 주기 때문이다. 큰 병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여 낫게 하는 의사보다는 병을 사전에 차단하는 의사가 더 명의라는 요지다. 모두가 편작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예방은 좀 서운하다.

식품이나 의료 제품과 관련된 이슈는 일반 국민의 생활과 매우 밀접하다. 이슈가 불거져 위기가 되면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적 파급력도 크다. 위기가 오기 전에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조기 경보 시스템을 상시 가동해 식중독을 사전에 예방하고, 매년 4만여건의 해외 위해 정보를 수집하여 문제가 될 만한 제품을 가려내 사전 조치한다.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유럽 등의 식의약품 관리 당국이 특정 제품에 대해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거나 오염, 이물 혼입 등으로 제품을 회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국내에도 같은 제품이 있는지 확인 후 조치한다. 수입 이력이 없어도 인터넷 쇼핑몰이나 해외 직구로 판매된 이력이 나오면 인터넷 쇼핑몰은 차단 요청하고 식품 부적합 정보는 식품안전나라에 게시해 소비자들에게 위해 정보를 제공한다. 게다가 마트의 제품 대다수가 우리 부처 소관이라고 하니 관리 대상만 족히 수십만 개는 되겠다. 철저히 관리하고 예방한다고 해도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예방은 고달프다.

그러나 고달픈 사람이 어디 우리뿐이랴. “아무 일 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싶은 아침이다. 계속 잘 부탁드린다고.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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