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름방학이 끝났다. 부모들은 ‘긴’ 방학이었다고, 개학했으니 이제 조금 해방되었다고 느낄지 모르나 학생들은 그저 ‘긴 휴가’쯤 되는 방학이었다고 느낄 것이다. 방학의 꽃은 당연히 여름방학이다. 들, 산, 바다로 갈 수 있는 계절이다. 그런데 그 방학이 너무 짧다. 그게 마땅한 것이라면 모를까 그릇된 것이라면 제 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나의 초등학교시절 여름방학은 40일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겨울방학이 길어지고 여름방학이 짧아졌다. 이른바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은 석유전쟁으로 이어졌다. 석유가 ‘무기’가 되었다. 1년 만에 유가는 네 배 가까이 치솟았다. 석유수입국들에게는 공포였다. 특히 산업화와 수출에 국운을 건 대한민국은 ‘석유공황’에 빠졌다. 세계경제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급락했다. 정부는 여러 업종에 대한 전력과 석유의 공급을 삭감했고 시민들에게 에너지 절감을 요청했다. 여름방학이 강제로 겨울방학으로 ‘피신’한 것은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지금은 교실마다 에어컨이 있는 경우도 많지만 당시에는 선풍기도 없었다. 그러나 겨울에는 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실마다 난로가 있었다. 석유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갈탄이나 목재가 주된 연료였다. 그러나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며 가능한 모든 에너지원을 줄이는 쪽으로 몰았다. 어차피 집집마다 취사 난방 위해 불을 때니 집에 있으면 학교 난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여름방학의 시간을 떼어 겨울방학에 옮겨 붙였다. 하지만 오일쇼크에서 벗어난 후에도 여전히 길어진 겨울방학은 요지부동이었다. 오일쇼크가 재발할지 모르니 일단은 그 비상체제를 가동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70년대 후반 다시 제2차 오일쇼크가 있었으니 그 판단에 타당성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대로 돌려놓고 상황이 악화되면 다시 비상체제로 전환하면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시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피신’했던 여름방학의 일부가 ‘귀환’하지 못한 채.
이제는 여름방학이 더 길었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5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조차 기억을 꼼꼼하게 소환해야 가까스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짧은 여름방학과 기형적으로 긴 겨울방학을 학교생활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3월 입학 개강 학제도 거의 없는데 우리만 고수하고 있는 건 미뤄두더라도 우선 학생들의 권리인 ‘긴 여름방학’부터 돌려줘야 한다. 어차피 겨울방학 이전에 진도는 거의 다 끝난다. 수업일수를 맞추기 위해 겨울방학 끝나고 개학해서 학교 가도 수업의 밀도는 낮아진다. 갑자기 여러 특강이나 견학 등의 프로그램이 채워진다. 평소에 하지 않던 것들이다. 마치 그런 것들은 2월에 몰아 쓰는 것인 양.
어차피 방학이라고 해봤자 학교 대신 학원에 가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뿐인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의 여름휴가가 거의 7월말~8월초에 몰리는 게 학원이 그때 짧은 휴가에 돌입하기 때문인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름방학은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다. 불행히도 날 때부터 짧은 여름방학을 만났으니 그걸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어른들이, 긴 여름방학을 몇 해라도 경험했던 어른들이 나서서 그들의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 그건 최소한의 책무다.
나는 이 문제에서 교육부의 처사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다. 교육부(당시 문교부)는 교육을 전담하며 학생들의 배움과 더불어 그들의 권리에 대해 적극적이어야 한다. 당연히 여름방학을 원래대로 돌렸어야 한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의 시대에 괜히 앞장섰다가 된서리 맞을 게 뻔하니 몸 사렸다. 비상상황이 다시 올지 모른다는 핑계로 적당히 둘러대며. 그러다가 학교의 일정이 거기 맞춰 굳어지니 일부러 원상태로 환원시키는 게 귀찮았을 것이다. 도대체 교육부가 학생들의 ‘권리’에 대해 나서지 않으면 누가 그걸 말할 것이며, 심지어 알기나 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가장 비겁한 건 바로 교육부와 교육공무원이다. 교사를 포함해서.
이제라도 제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방학을 늘려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른들은 제 권리와 잇속에는 거품 물고 대들면서 왜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것인가.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행복도 누리고 키워야 진화한다. 그게 인간 존엄의 중요한 한 축이다. ‘긴’ 여름방학을 돌려주고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세상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거 하나 제대로 자리 잡게 하지 못하면서 어른 노릇하지 말자. 우리 아이들 아닌가. 대충 뭉갤 문제가 아니다. 결코 가벼운 주장이 아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어른 구실 좀 제대로 하자. 어른들이 제대로 알고 나서야 한다. 교육부는 뒤로 꽁지 빼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지와 비겁의 갑옷을 벗어라!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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