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은 떼어낼 수 없는 시치미…더 크게 조국 딸이라 외쳐라”
대한 독립과 민주화에 투신했던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 입시비리 등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다. 그는 운동가의 아들로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언급하면서 “아버지를 안아 드려야 할 때”, “‘내 아버지가 조국’이라고 더 크게 외치라”고 조언했다.
고 장 선생의 삼남인 장호준씨는 “최근 조양의 아버지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조양이 당하고 있을 일에 더욱 화가 났고 많이 아팠다”며 편지를 시작했다. 그는 어릴 적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남의 집 물건을 깼을 때 집 주인이 아이들의 머리를 쥐어박고 보내줬지만 자신에게는 등을 두드려주며 “너희 아버님이 어떤 분이신데, 네가 이렇게 놀면 되겠니”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억울했다”고 회고했다.
장씨는 이어 “내게 아버지의 이름은 떼어낼 수 없는 시치미였다. 학교나 군대에서 요시찰 대상이 돼 압박을 받았던 것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오히려 큰 혜택을 주었다.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이 아버지와 동문수학 하셨던 분이셨던 덕이었고, 해외 후원금을 받으며 암울했던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아버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장씨는 조 후보자의 딸에게 “‘괜찮아질 거예요. 힘내세요’라든가 ‘참고 기다리면 다 지나갈 거예요’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지금 조양의 아버지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는 자들로 인해 조양이 겪고 있을 아픔의 시간들을 자랑스럽게 새겼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내 나이 환갑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나를 ‘장준하 선생의 삼남’이라고 소개하고, 이제는 그렇게 소개되는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버지에게 힘이 돼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장씨는 “어느 날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보게 됐던 것처럼 조양 역시 어느 날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보게 되겠지만 지금은 조양이 아버지를 안아 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며 “내가 조양의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딸 아이가 나를 한 번 안아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음 어느 한 구석에서는 ‘하필 내가 왜 조국의 딸이어서’라는 소리가 들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내 아버지가 조국이다’라는 소리가 더 크게 외쳐지리라 믿는다”며 글을 맺었다.
고 장 선생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월간 ‘사상계’를 발행한 언론인, 국회의원, 민주화운동가였다.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대통령 불가론’을 주장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수 차례 옥고를 치렀다. 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등산길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로 숨졌다. 가족들은 이후에도 박정희 정권에 의한 불이익, 압박 등으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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