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가짜 서울대 법대생 사건’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군을 제대한 중졸 출신이 복학생 행세를 하며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 졸업앨범 제작 과정에서 들통이 났다. 그는 과대표에 출마해 당선됐고 법대 교수 주례로 명문여대 졸업생과 결혼도 했다. 2012년 5월 회삿돈 200억원을 빼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체포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보 확인이 손쉬운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많이 줄었지만 과거엔 가짜 서울대생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학벌 중심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서울대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향해 “자유한국당의 손길이 어른어른한다”고 비난했다. “서울대를 나오면 자신이 내세우지 않아도 그냥 따라오는 게 많다”고도 했다. 우종학 서울대 교수도 “서울대 학생들과 동문은 한국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며 “부조리에 대한 분노는 여러분이 알게 모르게 악용한 입시제도를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모 인맥과 재력 덕분에 서울대에 들어온 상위 1%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주목하지 않고 조국의 불공정에만 집착하는 건 문제라는 시각이다.
□ 서울대생은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다. 수평적 정보 교환에 익숙해 공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국가 민족 조직 등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고 김용균씨 등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또래 젊은이들에 쉬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해도 부모 세대와 달리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는 배경일 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남북단일팀에 대한 반감은 ‘내 이익을 앗아가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 서울대생은 586 기득권층의 자녀 세대다. 이들이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의 불공정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승자 독식의 학벌 사회를 방치해 온 586세대의 책임이 크다. 장 자크 루소는 교육을 ‘사람 만드는 기술’이라 정의했다. “아이들을 공직자나 군인, 성직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가르치는 것이다.”(에밀) 서울대생들의 조국에 대한 분노를 비난하기에 앞서, 학벌인종주의와 양극화를 조장하는 불공정한 교육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조국도 지적했듯,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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