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는 총리, 가깝게는 장관 유임 노린 국내 정치용 발언” 해석
잇따른 반한 발언에… ‘고노담화’ 주역 아버지 고노도 걱정
‘일본 자민당 내 대표적인 온건파로 한국을 잘 이해하는 소수의 친한파 정치인.’ ‘일본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어 홈페이지를 스스로 개설할 정도로 새로운 한일 우호 교류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차세대 정치인.’
2000년대 초반 한일 언론에서 한 일본 정치인을 설명하며 내놓은 표현이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외교 갈등이 일본의 고강도 경제 보복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인물, 바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이다.
한때는 대표적 ‘친한파’로 “한일 신(新)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 젊은 세대의 책임(2005년 7월ㆍ동아일보 ‘세계의 눈’ 기고)”이라며 한일 교류 확대를 주장했던 고노 장관. 그는 왜 20여년이 흐른 지금, 아베 정권에서 한국 때리기에 앞장서게 됐을까.
◇아베 내각 입각하며 ‘아버지 지우기’
고노 다로는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주역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장남이다. 아버지 고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절친했던 인물로, 지금도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 고노 장관 역시 초기 중의원 시절 한국인 비서를 채용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등 친한파로 꼽혔다. 한일의원연맹을 통해 원희룡, 오세훈, 추미애, 김민석 등 당시 동년배 한국 국회의원 교류에도 열심이었다. 2001년 8월부터 2년여간 자신의 ‘한국인 비서’로 일했던 이성권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당선되자 한국 언론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기도 했다.
변신은 2015년 시작됐다. 고노 장관은 같은 해 10월 아베 정권의 3차 내각에서 행정개혁담당상이자 국가공안위원장으로 첫 입각했다. 그 전까지 고노 장관은 집권 자민당 소속이었으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고,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를 교훈 삼아 탈원전을 실현하자는 뜻을 공유하는 초당파 일본 국회의원 모임인 ‘원전 제로 모임’ 공동 대표를 맡는 등 소신파로 통했다. 자민당 동료 의원들에게서 “공산당이나 사회당으로 가 버려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내각 입성 후 보여준 행보는 평소 소신과는 달랐다. 고노 장관은 첫 내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고노담화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 드리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얼버무렸다. 아사히신문은 정권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해왔던 그의 블로그가 입각 후 '수리 중'으로 열리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하루 만에 다시 공개한 블로그에서는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했던 글은 대부분 볼 수 없게 처리된 바 있다. 이와 맞물려 최근 한 일본인 누리꾼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가 과거 탈원전 운동을 하면서 야당 정치인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고노 장관에게 이 사진을 보내면 차단(블록) 당한다”고 적기도 했다.
평소 트위터를 활발히 운영하며 6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고노 장관은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이들은 거리낌없이 SNS에서 차단하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블록 다로’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마이니치 신문은 올해 6월 20일 전하기도 했다.
◇연이은 혐한 망언은 ‘국내용 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8월 외무장관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고노 장관은 여전히 친한파로 통했다. 도쿄신문은 “아베 총리가 자신과 가까운 인물로 내각을 꾸리는 친구 내각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려 자신과 거리가 있는 고노를 입각시켰다”고 표현했고, 일본 SNS에서도 “고노 요헤이의 아들이 외무장관이라니 어이 없다”는 비판이 넘쳐났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의 취임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외무장관으로 발탁되자마자 고노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착실히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출범 초기였던 문재인 정부 견제에 나섰다. 그가 본격적인 반한(反韓)발언을 쏟아낸 것은 올해 7월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 이후부터다. 고노 장관은 지난달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말을 끊고 강하게 항의하는 등 외교 현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결례를 범했다. 이달 27일 기자회견에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거론하며 “한국이 역사를 바꿔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망언을 쏟아내면서 다시 한 번 공분을 샀다.
다만 고노 장관이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서 사실상 ‘배제된 인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은 아베 총리 측근들과 경제산업성이 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무성과 고노 장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핵심 정책 결정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때문에 그가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포스트 아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일본 내 반한 감정에 편승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고 봤다. 양 교수는 “아베 총리의 임기가 2021년 9월까지라 일본에서는 차기 수상을 둘러싼 세력 경쟁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고노 장관의 남 대사 초치나 강경 발언은 일본 국민의 반한 감정을 악용하는 ‘국내용 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아버지인 고노 요헤이도 잇따른 아들의 혐한, 반한 발언을 걱정스럽게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고노 요헤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가장 전향적인 태도와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 (고노 장관은) 아버지로부터의 후광이 역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노심초사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무리한 발언을 던졌을 수 있다는 의미다.
◇유임 혹은 교체… 고노의 운명은
고노 장관은 다음달 단행될 개각에서 교체설과 유임설이 엇갈린다. 때문에 그의 발언이 멀게는 차기 정치를 위한 것이지만 가깝게는 개각을 의식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계에서는 고노 장관이 교체되고 후임에 미일 무역 협상을 담당해 온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경제재생상이나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자민당 총무회장이 기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일본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는 28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와 관련해 “타협의 여지가 조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노 장관의 대응이) 한국을 몰아붙인 책임이 크다”며 그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고노 장관은 여전히 외교관계 협정의 파트너로서는 적절한 인물”이라며 “한국에 대한 이해도도 전반적으로 높고, 그보다 더 한국에 비판적인 강경 우파가 외무장관으로 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고노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는 연일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주 휴대폰으로 통화를 할 만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1일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엔 13초 동안 인상을 쓴 채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앉아 있던 모습과는 달리 갈라 만찬장에선 강 장관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다만 일본을 비롯해 미국, 중국이 외교보다 국익과 패권을 중시하는 자국 우선주의에 목청을 높이는 상황에서 일본 외무장관으로 그 누가 오더라도 외교 채널을 통한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양기호 교수는 “단언하긴 어렵지만 한일 외교 국장급 협의는 과거에도 대화 채널이지 해결 테이블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무성은 전통적으로 한일관계를 ‘봉합’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일본이 동맹보다는 전략적 국익을 외교 목표로 삼는 변곡점에 있는 상황이라 외무성 자체가 이 문제를 풀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