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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방문 진료, 의사들 외면에 한발짝도 못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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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방문 진료, 의사들 외면에 한발짝도 못 나간다

입력
2019.09.03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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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격오지 원격진료 참여 동네의원 1곳뿐… 방문진료는 수가 책정 차일피일 

지난 2016년 8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의료진이 원격의료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 2016년 8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의료진이 원격의료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4년 전 병원에서 부정맥 판정을 받고 심장에 이식형 제세동기를 이식한 L(45)씨는 정기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이식한 제세동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5분도 채 안 되는 검사를 받기 위해 그는 반나절을 허비한다.

경북 경주에서 살고 있는 K(80)씨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2년 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지만 K씨는 3개월마다 대구의 있는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다. 원격 진료나 방문 진료를 선호하지만 현재 그는 “약 타러 가다가 병을 더 얻을까 걱정”이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왕진”이라고 말했다.

고령화로 심각해지는 노년층 의료 접근성 문제와 산간지역 등 의료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ㆍ방문진료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원격 의료는 개원의들의 격렬한 반대로, 방문진료는 정부와 의료계 양측의 적극성 부족으로 진전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원격진료 시범사업의 경우 의사들의 집단 보이콧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전북 완주군은 지난달 14일 운주ㆍ화산 지역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공중보건의가 원격으로 진단하고 방문간호사를 통해 처방약을 환자에게 전달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역의사회 반발과 의료단체의 반대 성명이 잇따르자 시작도 못하고 보류됐다. 지난달 정부로부터 ‘규제자유특구’로 지정 받아 원격의료 실증특례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강원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격오지의 고혈압ㆍ당뇨 재진 환자들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자가 측정한 혈압과 혈당수치를 의사에게 전송,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원격진료라기 보다는 모니터링 성격이 강하지만, 사업에 참여한 지역 의료기관은 동네의원 1곳에 불과하다.

[저작권 한국일보] 원격의료 관련 사업 추진 일지.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원격의료 관련 사업 추진 일지. 송정근 기자

방문진료 사업 상황은 더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1월 건강보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가 질병이나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할 경우 의사 등이 직접 방문해 방문진료를 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방문진료에 따른 수가 책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사업개시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임호근 보건복지부 복지정책과장은 “올 8~9월까지 방문진료 수가를 산정해 사업을 실시하려 했지만 왕진에 따른 이동시간과 진료시간을 고려한 수가산정은 물론 사업 주체 선정 등 검토할 것이 많아 사업이 연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격ㆍ방문진료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급주체인 의사들이 사업에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의사들은 “사업에 참여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며 사업 참여를 꺼려하고 있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원격의료는 대면진료보다 효과가 떨어지고, 환자 안전성은 물론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방문진료의 경우 수가 책정뿐 아니라 방문진료에 드는 시간, 방문진료에 따라 의사가 부담 해야 하는 기회비용 등 관련된 모든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의협과 이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고령사회 대응을 위해 방문진료가 활성화된 일본에서는 정기적으로 주 1, 2회 환자 집을 방문하는 진료를 ‘방문 진료’, 환자의 요청에 따라 그때그때 환자의 집을 찾는 것을 ‘왕진’으로 구분해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왕진이나 방문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들은 보통 하루에 10~15곳을 방문해 환자를 진료한다. 2015년 기준 일본의 월평균 방문 진료는 70만 건, 왕진은 14만 건에 이른다. 2015년부터 도입된 온라인 원격진료도 만성질환자가 꾸준히 관리를 받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표류하는 원격ㆍ방문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005년 의료산업발전과 의료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운영했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와 같은 합의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원격ㆍ방문진료는 정부, 의사, 산업계, 시민단체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당시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위원 10명과 학계, 시민단체 대표 등 민간의원 20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며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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