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예슬의 입지가 위태롭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러블리함의 대명사’로 불리며 차기작들에 대한 세간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그가 이제는 ‘쪽박 행진’의 아이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슈퍼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였던 한예슬은 이후 ‘논스톱4’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구미호 외전’ ‘그 여름의 태풍’ 등에 출연했던 한예슬을 결정적으로 스타덤에 올린 작품은 ‘환상의 커플’이었다. 당시 ‘나상실’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던 한예슬은 시청률와 인기를 동시에 잡으며 톱스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해당 작품 이후 그는 ‘타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영화 ‘용의주도 미스 신’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지난 2011년 출연작이었던 ‘스파이 명월’은 승승장구하던 한예슬의 연기 생활에 급제동을 걸었다. 당시 한예슬은 작품을 촬영하던 중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제작진과 갈등을 빚던 중 촬영 거부를 선언하고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주연 배우의 잠적에 드라마는 결방됐고, 숱한 논란 속 결국 한예슬은 사태 발생 이후 10여일 만에 귀국해 KBS 드라마국과 스태프들에게 사과한 뒤 촬영을 마친 바 있다.
귀국 후 현장에 복귀해 작품은 마쳤지만, 주연배우로서 작품이 방송되는 도중에 촬영 현장을 이탈 및 잠적했다는 사실은 한예슬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가 해당 작품 이후 차기작이었던 ‘미녀의 탄생’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이 걸린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한 번 씌워진 ‘무책임’ 프레임은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올해 초 ‘빅이슈’ 출연 당시 한예슬이 SNS를 통해 의미심장한 내용의 글들을 게재한 이후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한예슬의 촬영장 재이탈을 걱정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메인 연출자가 폐렴으로 연출 일선에서 빠지고, 해당 여파로 역대급 방송사고까지 일어난데다 생방송에 가까운 촬영 스케줄이 진행되고 있던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의미심장한 SNS 게시물에 주연배우의 ‘촬영장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 건 한예슬의 전적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되는 주연배우로서,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껄끄러운 일들에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등의 이미지는 마이너스일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작품들의 성적이라도 좋으면 하건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의 공백 이후 복귀한 한예슬의 출연작 성적표는 영 변변찮은 모양새다.
방송 초반 최고 시청률인 10%를 기록했지만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기록하며 최저 시청률 4.7%까지 하락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던 ‘미녀의 탄생’을 시작으로 평균 0%대 시청률을 기록했던 ‘마담 앙트완’과 MBC 파업 등으로 인한 편성 수난 속 2~4%대 시청률로 내내 월화극 꼴지를 지켰던 ‘20세기 소년소녀’, 끝내 5%의 벽조차 넘지 못했던 ‘빅이슈’까지. 아무리 시청률의 의미가 예전만 하지 못한 요즘이라 해도 참담하기 그지 없는 성적표다. 약 5년 동안 모든 출연작들이 소위 ‘쪽박 행진’을 기록하다 보니 이제는 ‘운이 좋지 않았다’고만 위로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본업인 연기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편승 중인 한예슬은 이제 새로운 탈출구로 ‘예능’을 택한 듯 하다. 물론 2부작에 불과한 예능이지만 ‘첫 예능 MC 도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대적인 홍보에도 나섰다. 자신을 주축으로 한 메이크오버 토크쇼 MBC ‘언니네 쌀롱’을 통해 다음 달 5일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인 한예슬은 “새로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드리겠다”는 소감과 함께 “예능은 처음이지만,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된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앞선 작품들 역시 ‘나를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임했을 그다. 그 동안은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안겨줬던 그의 자신감 섞인 행보가 이번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지, 혹은 ‘연기도, 예능도 그저 그런’ 혹독한 결과를 안길 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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