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반 활동 제도적 기반 강화
북한은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2차 회의를 열고 국무위원장에게 외교대표 임명, 법령 공포 등 최고지도자의 중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번 개헌을 통해 대내외적인 국가수반으로서 활동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은 이날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대의원 687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회의가 개최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공식 ‘2인자’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의정보고에서 “(헌법에)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법령, 국무위원회 중요 정령과 결정을 공포한다는 내용과 다른 나라에 주재하는 외교대표를 임명 또는 소환한다는 내용을 새로 보충했다”고 발표했다. 그간 법령 공표나 대사 임명을 국무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번갈아 하던 것에서 벗어나, 사실상 최고지도자인 국무위원장의 이름으로 전부 시행하겠다는 뜻이다.
최 상임위원장은 이어 “국무위원장은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하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는 선거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새로운 조문으로 규제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겸하지 않듯 국무위원장이 국회의원 격인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최 상임위원장은 개헌으로 “우리 국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법적 지위가 더욱 공고히 되고 국가사업 전반에 대한 최고영도자동지의 유일적 영도를 확고히 보장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헌법 개정은 김정은 위원장이 갖는 직위, 권한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국가수반인 그의 대표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이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개헌을 통해 국무위원장을 ‘입법 수장’인 최 상임위원장과 함께 국가수반으로 명기했으나 둘 사이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세부 권한을 정비한 것”이라며 “제도 정비를 통해 정상국가 이미지를 다지면서도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에서 국가수반으로서 위상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외국 대사의 신임장ㆍ소환장 접수 역할은 여전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남아있지만, 전반적으로 국무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이 커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조선중앙TV가 이날 오후 8시 방영한 최고인민회의 실황녹화 장면에서 김 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4월 1차 회의에서 시정연설 등을 통해 정책 노선을 공표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회의에는 헌법 개정 외에 ‘조직 문제’도 안건으로 다뤄졌다. 이와 관련 김영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해임하고 박영일 조선사회민주당(사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교체했다고 통신은 밝혔다. 박영일 신임 부위원장은 지난해까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소개된 인물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이날 주석단에는 최룡해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 등 당과 군부, 내각의 주요 간부들이 자리했다. 조선중앙TV가 “박태성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이날 폐회사를 했다”고 전한 것으로 보아 이번 회의는 1박 2일 일정으로 치러졌던 4월 회의와 달리 하루 만에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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