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는 내륙국(육지로 둘러싸여 해안이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해군이 있다. 출항할 바다를 잃은 채, 해군은 해발 3,800m에 위치한 티티카카호(湖)에 주둔 중이다. 매년 3월 23일에는 바다의 날도 기념한다. 이날 볼리비아 최대 도시 라파스에서는 흰 제복 차림의 해군이 거리를 행진하고, 배 모형과 깃발을 든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른다. 과거 볼리비아가 가졌던 바다를 기억하고, 언젠가 되찾아오기 위해서다.
볼리비아가 태평양 연안 영토를 잃고 내륙국이 된 건 19세기 말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다. 싸움의 발단은 이곳에 풍부했던 ‘구아노’였다. 바닷새 배설물이 굳어 만들어진 구아노는 고농축 천연 비료다. 화학 비료 발명 이전이었던 당시, 구아노는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볼리비아가 이곳에 칠레 기업을 유치해 공장을 세운 이유다.
긴장이 고조된 계기는 칠레 기업들에 대한 볼리비아 정부의 세금 인상 조치였다. 이곳에서 막대한 수입을 거두고 있던 칠레는 즉각 반발했다. 결국 1879년 칠레는 전쟁을 감행했다. 볼리비아는 페루와 힘을 합쳐 맞섰지만, 영국ㆍ프랑스가 지원하던 칠레에는 역부족이었다. 1883년 전쟁에서 패한 볼리비아는 태평양 연안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칠레에 내줘야 했다. 총 면적 12만㎢, 해안선 400㎞에 달하는 땅이었다. 태평양 접근권을 잃은 볼리비아는 졸지에 내륙국이 되고 말았다.
이후 양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분쟁이 일단락된 1904년 체결된 ‘평화조약’은 일대 지역에 대한 칠레의 ‘절대적이고 항구적 지배’를 규정한 반면, 볼리비아에는 아리카 항구 무관세 통행권만을 인정했다. 칠레가 연안 영토뿐 아니라 해양 자원까지 획득하며 경제 성장을 계속하는 동안 볼리비아는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볼리비아는 여전히 자신들의 주권을 내세우고 있다. 2006년 취임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해양 진출권 확보’를 최우선 외교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는 볼리비아 영토 주권을 되찾겠다며 “1904년 평화조약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칠레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2011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해당 조약의 합법성을 재천명했다. 그러자 모랄레스 대통령은 칠레와의 대화가 ‘소득 없는’ 시도라며 2014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 사안을 회부했다.
4년의 심리 끝에 지난해 나온 ICJ의 판결은 볼리비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ICJ는 평화조약의 효력을 인정하고 칠레에 재협상 의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모랄레스 정부는 ICJ 판결로 볼리비아 해양 진출권 확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하지만 올해 바다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는 바다와 함께 시작된 나라”라며 다시 한번 해양진출권 확보 의지를 내보였다.
이미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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