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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원하는대로…” 삼성 말 3필 소유권 이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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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원하는대로…” 삼성 말 3필 소유권 이전 인정

입력
2019.08.29 18:45
수정
2019.08.29 21:14
2면
0 0

[대법 ‘국정농단’ 파기환송]

삼성, 정유라 지원 명목 34억 구입… 이재용 2심 “삼성 소유” 뒤집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국정농단’ 사건을 둘러싼 2년 반 동안의 법정 공방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박근혜(67)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63)씨, 뇌물공여자인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 모두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지만 하급심에서 엇갈렸던 주요 쟁점들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삼성 경영권 승계와 말 구입비 뇌물 인정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깨면서 최씨 딸 정유라(23)씨에 대한 승마지원 명목으로 제공된 말 세 마리(살시도ㆍ비타나ㆍ라우싱) 구입대금(34억1,797만원)과 삼성이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16억2,800만원)을 모두 뇌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특히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말 세 마리에 대해 최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최씨로부터 말 소유권을 갖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말 소유권 이전에 관한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의 1ㆍ2심과 최순실씨의 1ㆍ2심, 이 부회장의 1심은 말 소유 명의가 삼성전자라도 실질적 소유권은 최씨와 정씨에게 넘어갔다고 봤다. 하지만 이 부회장 2심은 “형식적인 말의 소유권은 삼성전자에게 있다”며 소유권 이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또 다른 쟁점이었던 ‘부정한 청탁’ 역시 실체를 인정하면서 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원도 제3자 뇌물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은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고 청탁의 대상인 직무행위의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며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에 비춰보면 영재센터 후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후원금을 제공했을 당시 삼성그룹에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경영권 승계 현안이 존재했고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결론은 박 전 대통령 1심과 이 부회장의 2심의 판결을 뒤집는 것이다. ‘승계 작업'을 뇌물의 대가로 인정하지 않은 것 역시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게 된 결정적 배경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주고 받은 이른바 ‘삼성 뇌물’은 정씨에 대한 승마지원 명목으로 쓴 독일 코어스포츠 용역대금(36억3,484만원)까지 포함해 총 86억여원이 최종 인정됐다. 박 전 대통령의 2심(부장 김문석)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는 대신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여원만 뇌물로 본 이 부회장 2심(부장 정형식) 결정의 대부분을 파기한 것이다.

'국정농단 ’ 사건 주요 쟁점별 대법원 판단. 그래픽= 김경진기자
'국정농단 ’ 사건 주요 쟁점별 대법원 판단. 그래픽= 김경진기자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 능력은 일부 인정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꼽혔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업무수첩’에 대해서는 ‘좁은 범위에서나마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최종 결정하면서 엇갈렸던 하급심의 판단을 정리했다. 대법원은 “안종범 업무수첩 중 지시 사항 부분은 작성자인 안종범 진술로 성립의 진정성이 증명돼 진술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수첩 내용 중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독대 후 안 전 수석에게 불러 적게 한 내용에 대해서는 “수첩 진술은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안종범 수첩은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 전후에 박 전 대통령에게 들은 내용과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한 지시사항을 일자 별로 정리한 것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수첩을 ‘사초’라 불렀다. 앞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1심은 증거능력을 광범위하게 인정했지만 이 부회장 2심은 증거능력이 전혀 없다고 봤고, 박 전 대통령 2심은 안 전 수석이 진술로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만 증거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는 “따로 판단해야”

대법원은 또한 박 전 대통령의 하급심 판결에 ‘분리 선고’라는 절차적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는 직권남용ㆍ강요 혐의와 분리 선고돼야 하지만 하급심이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1년 재임 중 직무와 관련된 뇌물 혐의는 판결 확정 후 피선거권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혐의 양형과 합쳐지면 피선거권 제한 기간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된다는 취지로 이 같은 판례를 확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다시 넘겨받게 된 서울고법 재판부는 뇌물죄와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에 대해 별도의 양형을 정해야 한다. 이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전체 양형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러 혐의를 하나로 선고하는 경합범보다 혐의를 분리해 양형을 선고할 경우 각각의 양형은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는 “명백한 법 위반이라 대법원도 원심 판결을 깰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의 판결 확정이 절차적인 문제 하나로 수개월 지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박 전 대통령 사면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잠시 수그러들 전망이다. 사면은 형이 확정된 피고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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