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딜 브렉시트(영국의 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 강행 뜻을 밝혀 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8일(현지시간) 기습적으로 의회 정회를 밀어붙이면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영국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반발 여론이 들끓으면서 영국 금융시장도 충격을 받았다. 야권은 존슨 정부 불신임 투표도 불사할 태세다.
이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0월 14일에 새 회기를 시작하는 ‘여왕 연설’을 해달라는 존슨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의회는 다음달 9~12일쯤부터 10월 14일까지 문을 닫는다. 하원이 여름휴가를 마치고 다음달 3일 개회하기 때문에 의회가 열린 지 일주일여 만에 폐쇄되는 셈이다. 따라서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까지 의회가 토론과 표결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당초 약 5주에서 3주 미만으로 단축됐다. 자연히 노 딜 원천금지 입법 등 브렉시트 방해 활동의 기회도 줄었다.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날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이에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존슨 총리의 결정은 명백히 의회의 브렉시트 논의를 막으려는 목적”이라며 “민주주의의 격을 떨어뜨리는 헌법 유린”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존슨 총리의 행보는 쿠데타이자 독재정권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것”이라며 그의 의회 정회 결정을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무자비한 리더가 크게 지지를 얻지 못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헌법상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지금 영국의 정치적 위기는 미국과 꼭 닮았다”고 평했다.
영국 의회 사이트에는 ‘의회 정회를 하지 말라’는 청원이 등장해 서명 인원이 29일 오후 5시 20분(한국시간) 기준 127만명을 넘어섰다. 런던과 맨체스터, 에딘버러 등 주요 도시에서는 분노한 브렉시트 반대파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영국 의회 앞에서는 시민들이 “쿠데타를 멈추라”는 구호를 외치며 존슨 총리에게 항의했다. 영국 트위터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StoptheCoup(쿠데타를 그만두라)’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폭주했다. 배우 휴 그랜트도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존슨 총리를 겨냥해 ‘당신이 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지는 않겠지. 내 할아버지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러 지켜낸 자유를 파괴하지 않을 거야’라는 비아냥 섞인 트윗을 올렸다.
내달 3일 하원이 열리면 “존슨 총리가 민주주의를 깨부숴 버렸다”고 비난했던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를 중심으로 야권에서는 노 딜 저지 입법과 정부 불신임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수당 내 이탈표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표결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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