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후 첫 공식 입장문 내 놔… 창사 이래 ‘최악 위기감’ 호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9일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자 삼성전자는 큰 충격에 빠졌다.
2심이 무죄로 판단한 혐의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유죄를 인정해 재판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어서 삼성전자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대법원 선고가 끝난 직후 입장문을 발표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움과 성원을 부탁 드린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재계에선 이례적인 삼성의 입장 발표가 현재 삼성이 처한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실적 악화, 일본의 수출 규제, 미중 무역 갈등 등 여러 악재에 시달리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3년간의 국정농단 재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등으로 주요 경영진 공백 사태가 이어지면서 내부 분위기는 최악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대법원 판결로 또다시 ‘총수 부재’라는 대형 악재에 직면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일본 수출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 경영 체제를 꾸리고,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생길 경우 회사 차원의 위기 극복 노력이 동력을 잃고 좌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3년여 간 계속된 재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찰 수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임직원 모두가 위축돼 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경영진과 직원들은 위기 대응에만 전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이 부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 경영 체제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 수출 규제 문제가 불거진 이후 계속된 현장 경영 행보도 이어갈 방침이다.
다만 향후 재개될 재판에 총력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차질이 불가피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2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뇌물 혐의가 대법원에서 인정됐기 때문에 이 부회장에겐 매우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면서 “일단 재판 국면에 돌입하면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두고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 판결로 삼성그룹의 경영상 불확실성이 가중된 것이 안타깝다”며 “삼성이 비메모리 반도체 등 미래사업 육성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 행정적 배려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5대그룹 한 관계자도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한국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며 “특히 이번 판결로 기업에 대한 이미지와 사회적 분위기가 더 악화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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