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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아닌, 20%에게 불평등의 책임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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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아닌, 20%에게 불평등의 책임을 묻는다

입력
2019.08.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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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슐츠 전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015년 1월 28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529 대학 저축 플랜' 개혁안 철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녀의 대학 학비 마련을 용도로 가입하는 저축 상품인 '529 대학 저축 플랜'의 세제 혜택을 줄이자고 제안했으나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 반발을 부르며 개혁안은 무산됐다. AP 연합뉴스
에릭 슐츠 전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015년 1월 28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529 대학 저축 플랜' 개혁안 철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녀의 대학 학비 마련을 용도로 가입하는 저축 상품인 '529 대학 저축 플랜'의 세제 혜택을 줄이자고 제안했으나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 반발을 부르며 개혁안은 무산됐다. AP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이 세계의 공감을 불러낸 것처럼, ‘상위 1%’ 개념은 누구에게든 예민한 주제다. 이른바 슈퍼리치들이 키워가는 부의 규모, 호화로운 생활 방식, 정치ㆍ경제계에 불어 넣는 입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감시하고 비판한다. 이렇게 굳어진 ‘1% 대 99%’의 구도는 누군가에겐 상당히 편리하다. 1%라는 소수만을 공공의 적으로 만듦으로써 여기에서 조금 비켜난 상위 계층에 대한 감시망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학 분야 선임 연구원인 리처드 기브스가 쓴 ‘20vs80의 사회’ 속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과연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상위 1%를 위해서만 작동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최상위 1%와 나머지 99%의 대결 구도를 고수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위 20% ‘중ㆍ상류층(upper middle class)’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가 10%도, 15%도 아닌 20%를 주장한 이유는 뭘까. 미국 내 여러 연구들이 지난 30~40년 동안 소득 하위 80%에서만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상위 20%는 견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1979년에서 2013년 사이 상위 1%의 소득(세전) 총합은 1조4,000억달러 증가했고 그 바로 아래 19%의 소득 총합은 2조7,000억달러 증가했다. 최상류층의 총소득이 1달러 증가할 때, 중상류층 총소득은 2달러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미국 전체 부의 27%를 상위 1%가 소유하고 있다지만, 경제학자 에드워드 울프의 추산에 따르면 최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 19%는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상위 20% 중ㆍ상류층은 2014년 기준 가구소득 11만2,000달러 이상인 이들을 뜻한다.

이들 중ㆍ상류층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2015년 1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야심 차게 만든 ‘529 대학 저축 플랜’ 개혁안이 의회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산된 일화다. 자녀의 대학 학비 마련을 용도로 가입하는 장기저축 상품인 ‘529 대학 저축 플랜’의 세제 혜택을 없애고 그 재원을 다른 세액 공제 시스템 확충에 사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주로 부유층 가구가 이 상품의 혜택을 받았기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신념과 맞아 떨어졌지만,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상위 20% 인구가 밀집한 지역구, 즉 ‘529 대학 저축 플랜’의 혜택이 집중된 곳에 민주당 상ㆍ하원 의원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의장이 직접 나서서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했다. 결국 발표 이튿날 백악관 대변인 에릭 슐츠는 해당 개혁안을 두고 “빗나간 것”이라고 논평했다. 대통령 스스로 개혁안을 좌초시킨 것이다.

저자는 상위 20%라는 계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공고화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따져본다. 가장 집중하는 문제는 양육, 그리고 교육에서의 격차다. 중ㆍ상류층 부모는 자녀를 잘 교육하는 의무에 매우 진지하게 임하며 많은 양의, 좋은 질의 시간을 과감하게 투자한다. 사회학자 그레그 던컨과 리처드 머네인에 따르면 여행, 책, 가정교사 등 ‘자녀의 풍성한 경험을 위한 지출’은 상위 20% 가구가 하위 20% 가구보다 10배 많다. 이렇게 벌어지는 격차는 명문대 진출(미국 명문대 학생 3분의 2가 소득 상위 20% 가구 출신), 고소득 일자리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계층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책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개념은 중ㆍ상류층의 ‘기회 사재기’다. 부모가 자신이 지닌 부와 영향력으로 경쟁의 판을 흔드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자녀가 잘 살기를, 또 자신의 계층을 물려받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자신들의 주거지를 하위 계층과 분리하고, 대학 입시를 중ㆍ상류층에 유리하게 만들며, 인턴으로 일할 기회마저도 인맥과 연줄로 얻어내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저자는 중ㆍ상류층을 거듭 ‘우리’라 부르며 자신이 이 계급에 속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스스로와 주변의 세태를 다양한 사례로 풍자한다. “내가 아는 어느 부부는 성공적으로 딸을 키우는 과업에 ‘멜리사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임신을 시도하기 전부터 부부 모두가 비타민을 먹는 것에서 시작해 유아기에 교육용 게임을 사주고, 학령기에 좋은 학교에 보내고, 저녁식사 때 가족이 모여 많은 대화를 나누고, 숙제와 대학 입시 준비를 도와주고, 유망한 인턴 자리를 잡아주는 데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사반세기 간 지속되는 이 프로젝트는 멜리사가 존재하기 전부터 부모가 준비하고 관리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 책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건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다. 당장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특권층의 왜곡된 삶을 비난하면서도 속으론 ‘멜리사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누군가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줄 책이다.

20vs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지음ㆍ김승진 옮김

민음사 발행ㆍ272쪽ㆍ1만7,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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