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년이었던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치욕스럽게 국권을 상실한 이날이 ‘경술국치일’로 불리는 이유다.
경술국치일 109년을 맞아 전국의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선 일제히 조기 게양과 함께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다채로운 행사도 이어졌다. 올해는 특히 역사 갈등에 따른 일본의 감정적인 경제 보복이 더해지면서 경술국치일의 의미는 더해졌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7월 제정 및 시행된 ‘서울특별시 국기게양일 지정 및 국기 선양에 관한 조례’에 의거해 조기를 게양했다. 게양 관청은 서울시청 본청과 사업소, 자치구, 투자출연기관, 시의회, 교육청, 교육지원청 등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다.
대구시도 이날 오전 7시부터 각 기관과 단체, 가정에 조기 달기 운동을 펼쳤다. 2014년 제정된 ‘대구시 국기게양일 지정 및 국기 선양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으로, 올해로 6번째다. 진광식 대구시 자치행정국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비록 슬픔과 치욕의 역사지만 이를 돌아보고 더 찬란한 미래를 다짐하기 위한 조기 달기 운동에 많은 시민들이 많이 동참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구, 충북, 강원, 제주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은 조례에 의거해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선 조기 게양 외에 △찬 죽 먹기 △내가 생각하는 ‘한 줄 역사’ 쓰기 △경술국치일을 알리는 게시물 설치 코너 등도 추가로 마련했다. ‘찬 죽 먹기’는 선조들이 경술국치일에 찬 음식을 먹으면서 그 날의 치욕을 잊지 말자고 한 데서 착안됐다. 청사에 조기를 게양한 전남도교육청의 경우엔 홈페이지 배너와 교직원 업무포털 팝업창에 경술국치일 기억하기 관련 이미지를 제작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게시했다. 충북도교육청은 도내 각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경술국치를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
빼앗긴 주권의 아픔을 잊지 않고 극일 정신을 고양하는 다양한 행사 또한 뒤따랐다.
청주 봉명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날 '역사 타일 벽화'를 제막하고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144×226㎝ 크기의 타일 벽화(2개)는 3·1 독립운동의 배경과 전개 과정 등을 담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 3월부터 타일 벽화 제작에 나섰다. ‘경술국치일에 하는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 교과 융합 학교 공간 재생 프로그램’으로 추진됐다. 학생들은 이날 타일 벽화 제막식 후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경술국치일 관련 역사 퀴즈를 풀고 109년 전 치욕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강원 춘천시 봄내중학교에선 이날 ‘경술국치’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수업이 진행됐다.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송하면서 시작한 수업에선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등 근대사를 담은 그림책 ‘백년아이’가 소개됐다. 봄내중 교내 독서동아리 학생 30명은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역사책을 미리 읽고 유관순(1902~1920) 열사와 곽낙원(1859~1939) 여사를 비롯한 일제 탄압에 항거한 여성들의 삶을 소개했다. 이날 수업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과 이종호 광복회 강원도지부장도 수업에 참관했다. 민 교육감은 이육사(1904~1944) 시인의 ‘광야’를 학생들 앞에서 낭송하면서 독립운동이 현재에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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