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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윤가은 감독 “삶의 무게 짊어진 아이의 마음 들여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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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윤가은 감독 “삶의 무게 짊어진 아이의 마음 들여다보고 싶었다”

입력
2019.08.30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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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은 데뷔작 ‘우리들’에 이어 두 번째 장편 영화 ‘우리집’에서도 아이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윤 감독은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윤가은 감독은 데뷔작 ‘우리들’에 이어 두 번째 장편 영화 ‘우리집’에서도 아이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윤 감독은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음의 작동 원리는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요. 몸만 훌쩍 자랐을 뿐, 어른이 되어도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예요. 깊이 넣어 뒀던 그 마음을 꺼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누구도 어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까맣게 잊고 지냈던 유년기 감정의 파고를 영화 ‘우리집’은 다시금 경험하게 한다. ‘그땐 그랬지’가 아니라 ‘지금도 그러하다’는 깨달음을 와락 안기면서.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윤가은(37) 감독은 “아이들도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며 “눈앞에 놓인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2016년 영화 ‘우리들’로 장편 데뷔했다. 초등학교 4학년 소녀들의 인간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등 여러 시상식을 휩쓸었다. 빛나는 발견이었다. 한 글자만 다른 제목에서 엿보이듯 ‘우리집’도 아이의 세계를 다룬다. 다만 시선을 친구에서 가족으로 옮겼다.

부모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열두 살 하나(김나연)와 가정 형편 탓에 이사가 잦은 유미(김시아)ㆍ유진(주예림) 자매는 우연히 동네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함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우리집은 내가 지킬 거야, 물론 너희 집도.” 어른의 세계에 뛰어든 하나의 단단한 다짐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상황이 단순해지면서 문제의 본질이 또렷하게 드러나요. 아이는 삶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용감하게 문제를 돌파해요.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강한 거죠.”

‘우리집’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선 아이들의 이야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집’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선 아이들의 이야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윤 감독은 어린 배우들과 즉흥극을 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냈다. ‘어린 배우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세요’ ‘믿을 만한 좋은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세요’ 등 촬영장에서 성인 스태프들이 지켜야 할 아홉 가지 수칙도 공유했다. 윤 감독은 “영화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세상의 진실은 때로 잔인하다. 유미와 유진이 종이 상자로 만든 집은 쉽게 부서지고, 하나가 만들고 있는 요리 레시피 책은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완성되지 못한다. 부모의 이혼도, 낯선 동네로의 이사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어떻게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고 가족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많이 아프기도 할 테죠.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다만, 그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아이들이 외롭지 않기를 바랐어요. 당장은 어두운 동굴을 걷는 기분이겠지만 밝은 햇살 속으로 나왔을 땐 더 튼튼해져 있을 거라 믿어요.”

윤 감독은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대학원) 과정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여성에게 유난히 차가운 영화계에서 뿌리 내리기까지 적잖이 방황도 했다. 윤 감독은 “여성 감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흐름 속에 영화를 만들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집’은 29일까지 2만5,000여 관객을 불러 모았다. 독립영화로는 적지 않은 숫자다. “‘우리들’ 개봉 때 여자아이 관객들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내 이야기를 영화에서 본 건 처음’이라고. 여성은 약자인데 소녀는 더 약자잖아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꾸준히 들려주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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