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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10대 피해자는 어떻게 허위신고 범죄자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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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10대 피해자는 어떻게 허위신고 범죄자가 됐을까

입력
2019.08.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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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신동준 기자
삽화= 신동준 기자

이야기는 2008년 8월 허위 강간 신고를 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10대 소녀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스무 곳 이상의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 자격을 갖춰 임대 아파트에서 홀로 살게 된 그는 어느 날 아파트에 침입한 낯선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했다.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가 진행된 일주일간 그는 최소 다섯 번 이상 당시 범죄상황을 반복했다. 하지만 진술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바뀌었고, 경찰은 그가 허위신고를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주목했다. 자신을 돌봐줬던 위탁모, 둘도 없던 친구가 자신을 의심했다는 경찰의 얘기에 그는 흔들렸고, 무너졌다. 결국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허위 자백했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거짓으로 강간신고를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허위 신고죄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삶은 철저히 망가졌다. 3년 후 진범이 잡히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가 실제로 강간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책은 미국에서 실제 발생한 7건의 성폭력 사건을 추적한 두 여성 형사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각 사건들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편견과 오해, 잘못된 수사 관행으로 미제로 남을 뻔했다. 반비 제공
책은 미국에서 실제 발생한 7건의 성폭력 사건을 추적한 두 여성 형사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각 사건들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편견과 오해, 잘못된 수사 관행으로 미제로 남을 뻔했다. 반비 제공

방대한 서면 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실화를 재구성해 비영리 인터넷 언론인 ‘프로퍼블리카’의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 수석 기자가 썼다. 7건의 성폭력 사건을 퍼즐을 맞추듯이 함께 추적하는 두 여성 형사도 등장한다. 저자들은 성폭력 피해자와 그의 주변 인물들, 사건을 수사했던 전ㆍ현직 경찰과 검사, 심지어 수감된 연쇄강간범까지 인터뷰하고, 꼼꼼하게 취재했다.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2015년 기사로 먼저 소개되면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저자들은 책에서 “강간 피해자가 자주 마주치는 의심의 역사를 따라가보고 싶었고, 형사들을 잘못된 수사로 빠지게 하는 편견과 가정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흔히 성폭력 사건은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묘사로 대중의 관심을 끈다. 책은 그런 부분을 최대한 배제했다. 성폭력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와 성폭력 수사 관행에 초점을 맞췄다. 책은 성폭력 사건을 보는 주변 인물의 편견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무감각한 수사 경찰의 관행적인 태도가 어떻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진술을 하고 나오는 소녀에게 위탁기관 관계자는 “너 강간당한 게 맞니?”라고 묻는다. 소녀의 위탁모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전날 그곳에서 강간을 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라고 경찰에 진술한다. 수사 경찰은 단서를 남기지 않은 강간범을 추적하는 것보다 혼란스러워하는 눈앞의 피해자를 심문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T. 크리스천 밀러ㆍ켄 암스트롱 지음ㆍ노지양 옮김 

 반비 발행ㆍ392쪽ㆍ1만8,000원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뤘지만 뼛속까지 공감 가는 것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편견이 국적 불문하고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어서다. 각계에서 미투(MeTooㆍ나도 고발한다)가 터져 나오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교롭게도 책에 나오는 연쇄강간범은 주한미군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책은 성폭력은 강력범죄 중에서도 신고율이 가장 낮은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말한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하는 순간, 수사기관부터 주변 지인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그의 말을 의심한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은 의심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결국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수사의 방향도 틀어버린다. 피해자가 범죄자가 돼버린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의 삶은 만신창이가 된다. 책에서 10대 성폭력 피해자는 사소한 다툼으로 자기를 공격하려고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는 위탁모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고작 그딴 것 때문에 강간당했다는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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