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나치 독일의 항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련은 48년까지 불과 3년여 동안 동유럽 각국에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해 위성국가화했다. 이에 서방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과 영국은 소련의 항구적인 동유럽 지배와 기타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당 집권을 우려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47년 3월 “발트해로부터 아드리아해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둘러싼 ‘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는 유명한 반공 연설에 나섰다. 공산주의에 맞서는 미국의 지도적 역할을 천명한 ‘트루먼 독트린’이 나온 것도 이때다.
□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며 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자 깜짝 놀란 미국은 아시아에서도 공산주의의 추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선 개념을 강구하게 된다. 중국 공산화 3개월 후인 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아시아에서의 위기’라는 연설을 통해 방어선 개념을 발표하는데, 그게 바로 ‘애치슨라인’이다. 애치슨라인은 알류산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함으로써 우리나라(남한)와 타이완, 인도차이나를 극동방어선에서 배제시켰다.
□ 애치슨라인은 남한을 무력 공격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 김일성 정권의 오판을 부른 실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철회된다. 이후 우리나라는 6ㆍ25전쟁을 거쳐 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중추 기지 역할을 하는 핵심 동맹국으로 자리해 왔다. 하지만 소련 등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 따라 동서냉전이 일단락되면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도 급변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ᆞ태평양 전략보고서(IPSR)’가 대표적이다.
□ 주로 중국을 겨냥한 IPSR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일본의 역할을 대폭 강화한 점이다. 보고서는 미일동맹을 인도ᆞ태평양 지역 평화와 번영을 위한 ‘주춧돌(corner stone)’로 규정함으로써 북한이라는 국지적 위협에 맞서는 한미동맹보다 상위 체제임을 은연 중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그나마 미국이 인도ᆞ태평양 안보전략의 근간인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애써 체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 일각에서 우리 스스로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빠지는 ‘제2 애치슨라인’을 긋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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