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청문회서 정부 조사결과 첫 공개 파장
자사의 가습기살균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LG생활건강의 주장과 달리 이 제품의 원료인 염화벤잘코늄(BKC)을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호흡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처음 공개됐다. LG생활건강은 이를 원료로 만든 ‘119 가습기 살균제’를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약 110만여개 판매했다. 정부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ㆍ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에 이어 BKC를 흡입독성물질로 인정할 경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전날에 이어 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연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특조위 심문위원들은 LG생활건강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LG생활건강 제품의 안전성 확인 여부에 대해 물었다.
이날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서동석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위원은 LG생활건강이 판매한 ‘119 가습기 세균제거제’ 원료인 BKC에 대해 “90일간 반복해서 흡입하면 비강과 후두, 폐 등 상기부 호흡기 계통에, 고농도로 흡입하면 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조사는 2016년 BKC가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위해성 논란이 커지자 2017년 말 환경부가 의뢰해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까지 이뤄졌다.
이에 대해 증인으로 나온 이치우 전 LG생활건강 생활용품 사업부 개발팀 직원은 “제품에 포함된 함유량을 조건으로 실험해야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다”며 해당 실험으로는 제품의 유해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LG생활건강은 해당 제품의 BKC 함유량은 0.045%로 극소량에 불과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제품으로 흡입 독성 실험을 해서 안정성을 확인했느냐는 특조위의 질문에 박헌영 LG생활건강 대외협력부문 상무는 “흡입 독성 실험은 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자료와 문헌에 근거해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 제품은 옥시와 애경에 이어 가습기살균제 가운데 세번째로 많이 팔렸다.
LG생활건강은 2016년 자사 제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독성 실험 결과 BKC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 LG생활건강이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LG생활건강이 안전성 근거로 제시한 실험 결과 수치도 호흡기로 들이마시는 경우를 확인하는 흡입 독성 실험이 아닌 입으로 마셨을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 경구 독성 실험 결과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LG생활건강 제품의 안정성 문제를 제기했을 때 LG생활건강은 독성 실험을 했다며 ‘전신 독성 위해성 없음’이라는 내용의 안정성평가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에도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던 것이 이번 청문회에서 확인됐다.
정부가 이번 연구 결과에 따라 BKC를 흡입독성물질로 인정할 경우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생활건강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해 피해를 입은 것으로 공식 인정된 사람은 2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업의 직접적인 배상 또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4단계 피해자로 분류됐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최근 특조위에서 부산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LG생활건강 제품을 사용한 사람을 조사했더니 20명이 나왔고 사망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박헌영 상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배ㆍ보상 문제와 관련해 “현재 우리도 국가 기관에서 진행하는 인과관계 실험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고 빠른 배보상을 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에도 자사가 생산하는 스프레이 등 호흡기로 흡입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흡입독성실험을 단 한번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2016년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LG생활건강 임원이 추후 모든 제품에 대해 안전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한 것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박헌영 상무는 “이후에도 동물실험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가에서 안전하다고 인정한 성분을 넣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 독성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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