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의 수식어다. 그가 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 책들은 다산이 전남 강진군에서 18년간 유배 생활하며 작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를 연구하는 많은 지식인도 자연스레 이 시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인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내가 알던 다산이 맞나 싶을 정도”라고 고백한다. 다산의 소년 시절부터 40세까지 생애를 되짚은 후 내린 결론이다. 지난해 3월부터 한국일보에서 연재 중인 ‘정민의 다산독본’은 그래서 “1년쯤 쓰면 생애 전부를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다”는 저자의 예상을 넘겼다. 그가 탐구한 다산은 무결한 현자가 아닌 결점과 그늘을 가진 평범한 청년이었다. “젊은 다산에게는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정조와 하느님이 그것이다. 임금을 따르자니 천주를 버려야 했고, 천주를 따르자니 임금의 사랑이 너무 깊었다.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릴 수 없었던 데 젊은 다산의 고뇌와 번민이 있었다.”
파란 1ㆍ2
정민 지음
천년의상상 발행ㆍ각 364쪽, 384쪽ㆍ각 1만7,500원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