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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술 1개에 수십년 투자... 일본 ‘틈새 1등 전략’으로 세계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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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술 1개에 수십년 투자... 일본 ‘틈새 1등 전략’으로 세계 장악

입력
2019.08.29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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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주권, 기술 독립을 향하여] <2> 장인정신으로 쌓아올린 일본의 기술력 

 日 정부 대기업ㆍ중소기업 협력 길 터주고 산업 생태계 만드는 데 주력 

일본의 주요 부품ㆍ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그래픽= 강준구 기자
일본의 주요 부품ㆍ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그래픽= 강준구 기자

“결과물만 보면 솔직히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구매해 사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미묘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차근차근 그 차이를 만들어 온 게 일본 기업, 그들의 힘입니다.”(탄소섬유 제조업체 고위 임원 A씨)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이 본격화하자 국내 산업 현장에는 일본을 향한 ‘분노’와 ‘부러움’이 혼재하고 있다. 양국의 튼튼했던 산업 공조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린 것에 격분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이를 과감히 깨뜨릴 수 있는 일본의 자신감과 이면에 자리잡은 그들의 탄탄한 기술력을 탐내는 시선이다. “앞으로 일본을 극복하려면 그들을 제대로 알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게 우선이겠죠.“ 재계단체 한 관계자의 말처럼 말이다.

◇‘작은 연못에서 잉어를 낚는다’ 틈새시장 1등 전략

명실공히 제조업 강자로 군림하는 일본은 특히 기초소재 부품 산업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 대상 품목으로 지목됐던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등은 물론이고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실리콘웨이퍼 등 수많은 품목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게 일본 기업들이다.

국내 업계는 일단 ‘그들의 틈새 1등 전략‘을 주목한다. 지금 당장은 작은 시장에 불과하더라도, 그래서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기술 하나를 선택한 뒤 그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1등 기술을 보유하겠다며 장시간 투자하고 연구한 결과라는 것이다.

반도체 핵심 재료이자 일본의 수출 규제 1호 품목으로 지정됐던 포토레지스트(감광성 합성수지)를 생산하는 JSR이 좋은 예다. JSR은 원래 합성고무를 제조하는 정부 출자기업으로 시작했다. 지금이야 신에츠화학, 도쿄오우카와 함께 전세계 포토레지스트 시장 90%를 점유하고 있지만, 1980년 사업 다각화에 나서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일본 내 화학기업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들이 포토레지스트에 눈을 돌린 건, 합성고무를 제조하면서 축적했던 고분자화학 분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원료를 합성하고 분석하며, 배합하는 기술력을 ‘폴리머’라는 감광용제를 녹이는 포토레지스트 제조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10년 정도의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것이 업계 최초로 첨가제에 의해 광화학 반응의 통제성을 높이는 기술을 적용한 ‘i선 광원용 포토레지스트’였고, 또 다시 10년이 지나 ‘ArF 광원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인들은 ‘작은 연못에서 큰 잉어를 낚는다’는 말을 즐긴다”며 “다들 큰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해 빈틈으로 남겨둔 분야를 귀신같이 찾아내 기술을 개발해 온 것이 지금 일본 기술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가전기업에서 세계적인 불화수소 생산업체로 변신한 스텔라, 전기절연 재료를 생산하다 테이프 등 점착 분야 기술을 다각화해 액정표시장치(LCD) 소재 등 첨단소재 사업의 강자가 된 닛토덴코 등도 ‘틈새 1등 전략’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있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한 분야를 파고들어 연마하고 또 연마해 결국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특유의 기업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세라믹 콘덴서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무라타제작소가 대표적이다. 이 곳은 자체적으로 90개 정도의 자사 강점 기술을 선정해 이를 관련 분야로 체계적으로 분리,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년간의 기술 로드맵과 이를 활용한 제품 로드맵을 따로 작성해 관리해나가면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탄소섬유 업계 강자인 도레이도 이 같은 문화가 있어 지금의 성장이 가능했다. 1960년대부터 탄소섬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갔지만 수십 년간 매출이나 수익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탄소섬유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 노하우를 쉽게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는다”며 “철저한 도제식 문화에다 인력 유출 방지나 특허 관리에 철저해 후발주자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어 내는 것도 기술경쟁력을 유지하는 또 다른 힘”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정부의 지원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3월 ‘모노즈쿠리(제조를 뜻하는 일본 고유 언어) 기반기술진흥기본법(모노즈쿠리법)’을 공포한 이후 현재까지 이 법률에 근거한 모노즈쿠리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중소기업 성장을 위해 재정, 기술, 인력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게 법의 취지다. 연구개발, 기술자 연수, 특허권 관리 지도 등 매년 방대한 분량의 백서까지 발간하면서 정책을 재점검하고 있다. ‘정말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를 찾아 지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정부는 단순히 하나의 기업을 지원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술 개발 로드맵을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이를 통해 소재 부품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일본 정부의 주요 역할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반으로 성장해 현재에 이른 게 바로 일본의 기업들”이라며 “이런 일본을 극복하려면 단순히 소재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일본 기업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국가적인 과학지식과 현장 기술을 결합한 이노베이션 인프라를 강화하는데 정부와 기업 등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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