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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배흘림기둥의 美, 그 전설과 실제

입력
2019.08.2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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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배흘림기둥, 그리고 석등.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배흘림기둥, 그리고 석등. 한국일보 자료사진

딱히 고건축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배흘림기둥’이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으리라.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1994년 발행된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다. 요즘이야 워낙 볼거리가 다양해서 책은 그저 시큰둥한 대상일 뿐이지만, 당시만 해도 잘된 책을 읽는 것은 매력적인 즐거움이었다. 때문에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더랬다. 부석사 창건주인 의상대사는 몰라도 배흘림기둥에 기대선 사진만은 놓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배흘림기둥의 대명사처럼 된 것은 이 건물이 고려 중기를 계승한 고려의 대표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석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속에 다른 6곳의 사찰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그런데 왜 고려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하필 영주에 있는 걸까? 사실 고려의 최고 건축은 당연히 수도인 개성에 있었다. 그러나 개성에 위치하던 장엄한 건물들은 모진 세파 속에 죄다 스러졌고, 무량수전은 남게 되니 영광이 영주로 옮겨진 것이다. 즉 위대해서 승리했다기보다는 살아남은 자가 위대해진 경우라고나 할까! 삶의 아이러니는 때론 건축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배흘림기둥이라는 명칭은 사실 매우 장난스럽다. 이 말은 ‘배가 흘려졌다’, 즉 ‘배가 튀어 나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배흘림기둥을 설명할 때, ‘50대 아저씨의 푸짐한 배’라고 말하곤 한다.

배흘림기둥은 위에서 3분의 2 지점이 가장 굵은 형태로 되어 있다. 이렇게 기둥을 깎는 것은, 멀찍이서 보면 기둥이 오목렌즈처럼 안으로 휘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해서 사전에 배를 튀어나오게 하는 보험을 들어 착시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데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는 진짜 착시 현상을 보정하는 효과가 존재할까? 이건 또 뭔 소린가? 사실 배흘림기둥은 우리의 한옥처럼 벽체로 마감하는 건축이 아니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투각(透刻)형 건물에 적합한 건축 기법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중심에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에 자리한 파르테논 신전은 먼발치에서도 강렬한 포스를 발산하며 우러러 보인다. 이때 높게 줄지어 선 기둥에 오목한 착시 현상이 발생하면, 건축은 웅장미를 잃고 세장해 보이면서 위태롭게 느껴진다. 이 때문에 투각형의 층고가 높은 건물에서 배흘림기둥은 필수적이다.

벽체가 없는 투각 건축은 기후대가 따듯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반도의 기후는 그렇게 온화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해서 우리의 건축은 기둥의 옆이 벽체로 마감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건축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배흘림기둥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배흘림기둥의 볼록한 기둥 옆에 직선의 벽체나 창호가 나란히 존재하는 상황을….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멀리에서 보더라도 굽은 것은 굽은 것이고, 곧은 것은 곧은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시각 보정 효과가 전혀 작동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전통 건축에 배흘림기둥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선진 건축의 유행을 우리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즉 약간 겉멋 든, 갓 쓰고 양복 입은 경우라고나 할까? 배흘림기둥의 우아미는 실상 외래 문화에 열광한 우리 조상들이 남긴 흔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문화는 교류하면서 발전하고 흘러가면서 새로운 전통으로 확립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찍는 사진 역시 초점을 잃은 것이 아닌, 또 다른 시대적 의미이자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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