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28일부터 본격 시행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일본의 추가 규제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일본의 1차 수출 규제 여파를 피했던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이번 추가 경제보복의 주요 타깃이 될 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일본산 소재 의존도는 80%에 달하고 있어, 일본이 관련 소재 수출 규제를 하면 생산라인이 단기간에 멈출 수 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은 27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예정대로 2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조치가 시행되면 우리나라로 수출되는 1,120여개 전략물자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라 수출할 때 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지난 7일 일본 경산성이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외에 개별 허가 품목을 따로 지정하지 않는 `시행세칙`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양국 갈등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함에 따라 일본이 맞대응으로 추가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후 일본 정계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는 소식이 일본 언론을통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유력 언론은 22일 이후 "일본 정부 내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며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한국 화이트 리스트 제외 조치 외에 한국에 대한 또 다른 규제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이어 보도하고 있다.
일본의 태세 변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내 산업계는 반도체 업계, 그 중에서도 메모리 생산 업계다. 메모리 업계는 일본의 1차 수출 규제가 시스템 반도체 생산라인을 정조준한 덕분에 당장 소재를 구하지 못해 생산라인을 돌리지 못할 위험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3차 규제로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 반도체 회로를 그릴 때 필요한 `블랭크 마스크` 등을 수출 규제 목록으로 추가 지정할 가능성이 거론되자 메모리 업계도 불안해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글로벌 시장의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글로벌 IT 업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이 메모리가 아닌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겨냥해 1차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것도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의 이런 영향력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국내 메모리 반도체를 겨냥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다는 것은 사실상 양국 경제 전면전을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다”며 “일본이 이런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양국 갈등이 안보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어 일본이 향후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예측하기 어려워 불안하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 관계자도 “일본이 반도체 주요 소재를 대거 수출 규제 목록에 올린 뒤, 수출 허가를 빠르게 내주는 방식으로 한국 산업계를 압박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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