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잘 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이 시장은 제18대 국회의원 시절 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다. 자연스럽게 상대방과의 공감 능력이 남다르다는 일부 평가가 뒤따랐다. 이 시장이 시정의 우선 기치로 내세운 것도 소통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오만하다’, ‘선민의식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등 이 시장을 향한 불편한 시선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광주형 일자리와 2019광주세계수영대회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한 이 시장의 발언이 시민단체 폄훼 시비와 인권단체 반발 등을 낳으면서다. 한 시민단체는 이 시장을 향해 “전근대적이고 오만한 권력자”라고 독설까지 날렸다. 이 시장과 사이에 형성된 갈등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한 셈이다.
이 시장이 말로 외풍을 자초한 가까운 사례는 지난 25일 광주형 일자리 자동차위탁공장 합작법인(광주글로벌모터스) 관련 기자간담회 발언을 들 수 있다. 이 시장은 당시 “일부 사실이 아닌 내용이 보도돼 투자가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시장은 그러면서 간담회 말미에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매사를 비난하고 폄하만 하는 일부 단체의 주장까지 수용하다 보면 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시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도 진행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 것인데, 이를 두고 ‘반쪽 간담회’, ‘불통’이란 비판이 나왔다.
시민단체는 즉각 발끈했다. 참여자치21은 “이 시장이 시민단체의 지역 현안에 대한 공적 비판과 감시활동을 비난과 폄하만 하는 ‘몽니’ 시민단체로 끌어내리는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이는 이 시장이 시민단체 활동가들 입을 틀어막겠다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에 기반한 선민의식의 발로”라고 맹비난했다. 참여자치21은 앞서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 이사로 광주시가 추천한 박광태 전 광주시장이 선임된 데 대해 ‘노사민정’ 사회적 대타협에 반하는 리더십이라고 부적격 입장을 표명한 터였다. 참여자치21은 “이 시장이 ‘일부 단체’를 정확히 밝히고 시민단체 폄훼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각계 영역과 공동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27일 박 전 시장의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잘못된 인사를 추천한 이 시장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광주시의회는 “시가 박 전 시장 대표이사 선임과 이사진 선정을 두고 의회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며 광주형 일자리 문제점을 따져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시장의 입심은 인권단체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광주인권회의와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 시장이 지난 7월 10일 광주세계수영대회를 앞두고 대회 기간(7월 12~18일) 각종 시위나 집단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한 발언에 대해 “광주를 대표하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말”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26일 이 시장이 호소문을 공식 취소하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새로운 입장문을 다시 발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광주시 인권옴부즈맨에 냈다.
이 시장이 연출한 설화의 압권은 지난해 8월 ‘버르장머리 발언’이었다. 이 시장은 당시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 방식을 놓고 공론화 요구를 위해 예고 없이 시장실을 찾아온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그런 버르장머리는 어디서 배운 거냐”고 막말을 했다. 이에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 시장이 시대에 뒤떨어진 관료사회의 권위주의적 습성에서 갑질 언행을 했다”고 비난했고, 이 시장은 결국 시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이 시장의 연이은 구설을 두고 시민단체들 사이에선 “시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서 생긴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1월 말 광주형 일자리 협상 타결이 시정 운영에 엄청난 탄력으로 작용하면서 이 시장의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시장이 지난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광역시장 이용섭. 제 이름 석 자에 광주의 미래가 달려 있고, 150만 광주시민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쓴 글이 최근 다시 소환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민심의 바다는 권력의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점을 이 시장은 깨달아야 한다”며 “제발 시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하지 않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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