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승준씨가 지난달 당국의 비자 발급 거부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17년 만에 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판결과 관계없이 비자 발급은 행정 당국의 재량에 달려 있는데, ‘사회질서나 선량한 풍속을 해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을 들어 입국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이를 좌우하는 기준은 도덕성과 국민 정서다. 대법 판결 후에도 70% 가까운 입국 불가 여론에서 나타나듯 ‘군복무 기피’라는 민감한 사안에 정부는 냉정하고 엄격할 수밖에 없다.
□ 특정 사건에 대해 도덕성을 잣대로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를 뜻하는 국민 정서는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불문율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국민정서법’은 때론 헌법이나 실정법보다 중히 여겨진다. 이런 집단의식의 근원을 대체로 중국보다 순도 높은 유교주의에서 찾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들기도 한다. 대국에 둘러싸여 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자각이 ‘힘’보다는 ‘도덕’으로 무장하는 길을 택했다는 주장이다. 국내서 오래 거주한 마이클 브린 전 외신기자는 “한국에서는 어떤 쟁점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임계질량에 이르면 앞으로 뛰쳐나와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수로 변모한다”고 책에 썼다.
□ 국민정서법은 실정법이 사회 변화에 뒤떨어져 있거나, 특권층에 유리하게 법을 집행하는 경우 이를 바로잡는 효능이 있다. 고위공직자 전관예우나 병역면제, 재벌 편향의 ‘징역 3년, 집유 5년’ 정찰제 판결 등 부정의와 불공정 관행을 깬 것은 국민정서법 덕분이다. 하지만 감정과 분위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가변적이고 이중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국민의 상식과 정서에 호소하기 유리한 사건 피의자가 일반 형사재판보다 국민참여재판을 선호하는 반면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이 국민참여재판을 “원치 않는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격을 국민정서법으로 진단하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주류다. 정의와 공정, 평등의 가치를 일그러뜨린 책임은 실로 크다. 실정법 위반을 따지기에 촉박한 인사청문회는 국민정서법으로 심판하는 자리다. 절대적 열세인 그에게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있다면 ‘진실’과 ‘사과’의 변이다. 사람의 감정과 정서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게 국민정서법의 순기능이자 역기능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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