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다리 잃은 50대 여성, 숨지고 2주 지나서야 발견돼
장애활동지원서비스 중단 1년 간 관련기관 모두 정보 공유 외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하는 복지 신청주의 사각서 또 죽음”
“통보할 의무가 없다.” “알릴 의무가 없다.”
서울 관악구에서 50대 장애인 여성 정모(52)씨가 홀로 죽은 지 2주만에 발견됐다. 그간 이용하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1년간이나 끊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알아보지 않았다. 관련 기관들은 정씨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끊었다는 사실은 ‘알릴 의무가 없는 일’이었다는 대답만 내놨다.
27일 서울 관악경찰서 등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일 오후 8시쯤 삼성동의 한 다세대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건물 2층에 살던 주민이 일주일 이상 악취가 지속된다며 관리인에게 연락했고, 시신을 발견한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시신은 뼈가 보일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부패 상태, 이웃 주민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시기 등으로 미뤄 8월초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웃 주민들 말을 종합하면, 정씨는 15년 전쯤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살았다. 다른 가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병이던 당뇨 합병증 탓에 2016년 한 쪽 다리를 절단했다. 수술 뒤 정씨는 장애인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고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아 왔다. 생계급여, 주거급여, 장애인 수당 등 약 7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정씨는 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중 취약계층이었다.
그렇다고 삶의 의지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날 찾은 삼성동 정씨 집에는 장애인 단체 후원 우편물, ‘2019년 생각해볼 문제’라는 제목 아래 ‘장애인복지법’이라 적힌 포스트잇, 생전에 배웠다던 멜로디언 같은 물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뭔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노력하고 있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흔적들이다.
정씨의 고독사가 뒤늦게 알려진 건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는 식으로 운영돼서다. 정씨의 경우 지난해 7월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다 이용기관 변경을 위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이용을 중단한다고 통보했으나, 그 뒤 다른 센터에 서비스를 신청하진 않았다. 하지만 동주민센터 복지정보시스템에는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정씨의 이용기관 변경 신청을 받았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그런 신청을 다른 곳에 알려줄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바우처 카드를 통해 서비스 이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청과 사회보장정보원도 “그런 사실을 알릴 의무가 없다”고만 했다.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을 위탁받은 국민연금공단 역시 1년에 한차례 정도 장기 미이용자 명단을 파악할 뿐이다. 2018년 말 점검 당시, 이용을 중단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정씨는 집계 대상이 아니었다는 설명을 내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적어도 서비스 이용 중단 여부, 사유 등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어야 검토한다는 ‘복지 신청주의’의 사각지대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며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이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면 최소한 왜 그런지 물어보고, 되도록이면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은 ‘6개월 이상 바우처 미이용자에 대해선 수급 중지가 가능하다’는, 재정 절감 차원의 조항만 두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업무의 손과 발이 되어줄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의 증원도 필요하다. 정씨가 살았던 삼성동 주민센터는 7명의 복지플래너가 기초생활수급자 1249명과 장애인 1536명을 담당한다. 노인 등 다른 취약계층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각지대, 이중ㆍ삼중의 취약계층을 중점 관리하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수가 적다 보니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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