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 비난과 야단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조국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연상시킨다. 대통령 재임 때는 물론이고 퇴임한 이후에도 ‘봉하 아방궁’과 ‘논두렁 시계’ 같은 악질적인 허위기사로 목을 죄었던 이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상고 출신 대통령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상고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민주공화국의 진실이 매우 언짢았을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동화 같은 ‘노무현 서사’가 민주공화국의 큰 보람이었다.
상고 출신 인권변호사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노무현 서사’와 대칭을 이루는 것이 ‘조국 서사’이다. 노무현과는 정반대로 금수저 출신의 ‘원조 강남좌파’가 자신의 출신계급을 뛰어넘어 노무현의 못다 한 개혁과업을 완수한다면 이 또한 민주공화국의 보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무현 서사’의 대칭적인 연장으로서의 ‘조국 서사’를 들여다보면 노무현 죽이기에 혈안이었던 사람들이 왜 지금 유독 조국 죽이기에 혈안인지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과 같은 계급 출신의 강남좌파가 바로 그 계급을 향해 개혁의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악몽일 것이다.
이들의 가장 손쉬운 대응전략은 말하자면 ‘겨 묻은 개’ 전략, 그러니까 “너도 특권과 비리로 얼룩진 똑같은 쓰레기”라는 허상을 덧씌우는 것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노무현에 이어 조국에게도 이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듯하다. 여기에는 위법 여부를 떠나 평소 입바른 소리 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온갖 금수저 특혜를 다 누리고 있었다는 국민들의 배신감도 짙게 배어 있다.
조 후보자로서는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하던 말로, 감방에나 드나들던 건달이 대학 다닌다고 하면 기특하다고 칭찬받지만 대학생이 감방에나 드나든다고 하면 비난을 받는 법이다. 정황과 의혹에 비해 아직 위법 행위를 했다는 스모킹 건은 없다. 딸의 입시의혹은 문제가 있다면 해당 논문을 지도한 교수나 진학한 대학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수많은 언론 보도와 달리 외고 학생들 중에서 특별히 조 후보자의 딸이 특혜를 받았다는 정황도 없다. 원래 특권층인 조국에게 펀드 가입과 자녀 외고 보내기는 다른 특권층과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없는 입시전형을 만든 최순실 딸의 경우와 있는 입시전형을 최대한 활용한 조국 딸의 경우는 확실히 다르다.
다만 일상이었을 그의 특권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줄 수도 있음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점은 아쉽다.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에 처음 입성할 때부터 재단과 펀드를 사회에 환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우리가 아쉽다고 해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자 증세를 주장했던 부자들에게 왜 세금고지서에 적힌 액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지 않았냐고 추궁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부자 개개인의 도덕성에 기대기보다 세법을 고치는 게 더 낫다. 조 후보자가 제도 개혁을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화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출신계급을 배신하는 정책도 밀어붙일 위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꼭 조국이어야 사법 개혁이 성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무적의 슈퍼히어로도 아닐뿐더러 그에게만 기댄 개혁은 이미 실패한 개혁이다. 그러나 조국이 이런 식으로 낙마한다면 그 누가 오더라도 사법 개혁은 물 건너갈 것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어느 누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세구조의 문제이다. 좋든 싫든 조국 후보자의 진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의 성공 여부와 상당히 결부돼 버렸다. 불투명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펼쳐질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 전체를 좌우할지도 모른다.
조국이 낙마하고 그 자리에 다른 후보자가 들어서면 지금의 광란적인 공세가 사라질까?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 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아마 더욱 기세를 올려 사법 개혁 자체를 무산시키고 여세를 몰아 총선까지 내달릴 것이다. 온 가족의 신상과 사생활을 까발려서 조그만 의혹의 꼬투리라도 붙잡아 인신공격의 융단폭격을 마다 않는 지금의 무력시위는 잠재적인 대안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과연 누가 지금의 광기를 버티면서까지 사법 개혁을 위해 장관 후보자로 나서려고 할 것인가? 그래서 지금의 논란은 단지 조국 후보자 한 명을 둘러싼 대립이 결코 아니다. 행여 조국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한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이 다시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그때는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고 묏자리까지 아예 파헤쳐서라도 주저앉히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더 도덕적이고 더 개혁적인 후보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이다. 이 광기의 살육을 나는 규탄한다. 그것이 적어도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길이라 믿는다. 지난 시절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우리 시대의 동화를 이번에는 꼭 지키고 싶다. 나는 조국을 지키련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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