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 전 공동운영위원장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이나 제품을 판매한 가해 기업들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정부는 사회적 대참사에 무능하게 대처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라도 피해자 인정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첫날인 27일 김기태(44)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 전 공동운영위원장은 미온적 대처로 일관하는 기업과 정부를 향해 진정성 있는 대책을 촉구했다. 3주 전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그는 현재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ㆍ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특조위는 이틀간 서울시청에서 전·현직 고위 공무원, SK케미칼ㆍ애경산업 기업 임원 등을 출석시킨 가운데 참사 책임을 따진다. 첫날인 이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피해자 분들과 가족 분들께 사과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표현으로 향후 피해자 보상에도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SK케미칼은 원료 물질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생산 및 공급 제조사, 애경산업은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사회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사용 범위가 넓다 보니 인명 피해 또한 막대하다. 정부(한국환경산업기술원) 공식 집계로 지난 23일 기준 사망자 수는 1,431명, 피해자 신청 수는 6,509명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구제급여 대상자는 852명으로 1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김 전 위원장은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등 사법 절차 진행과는 별개로 가해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데 대해 분노가 여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기업 이익 추구에만 골몰하다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데 이마트, GS리테일, 다이소 같은 유통업체들은 아직도 책임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2년여의 경험에서 다시 한 번 제조물책임법(PL)의 중요성을 느꼈다고도 한다. “가습기살균제 판매는 하자 있는 제조물에 의해 시민이 피해를 입어 제조물책임법 위반”이라며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으려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입증 책임 전환 △징벌적 손해 배상 △집단소송 도입 등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일 피해자가 내 아내, 내 자녀면 마음이 어떻겠냐”며 “생업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돈과 시간을 할애하며 일을 하다 보면 정말 힘들 때가 많지만 피해자들의 사연을 들으면 도저히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그간 심경의 일면을 내비쳤다. 특히 그는 “피해자와 가족을 대하는 환경부와 기업들의 태도를 전해들을 때마다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며 그간 정부와 기업들의 소극적인 대처를 일갈했다.
가습기넷과 피해자들은 지난 4월부터 정부에 환경부ㆍ특조위ㆍ전문가ㆍ피해자가 모이는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열자고 요구했지만 형식적인 답변만 보내 피해자들과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2017년 8월 8월 피해자들에게 ‘가습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하고 꼭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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