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는 주변 사물을 이용하는 독창적인 재난 탈출기를 그려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올 여름 극장가에서 1,000만 영화가 실종됐다. 성수기 스크린 농사가 흉작이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지표다. 한국 영화계는 2014년 ‘명량’ 이후로 2015년 ‘베테랑’과 ‘암살’, 2016년 ‘부산행’, 2017년 ‘택시운전사’, 2018년 ‘신과 함께-인과 연’ 등 매해 여름마다 1,000만 영화를 배출해 왔지만, 6년 만에 그 전통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올해도 총제작비 100억원대 한국 영화 네 편이 7, 8월에 집중적으로 개봉했다. 그러나 ‘엑시트’를 제외하고는 세 편 모두 부진했다. ‘나랏말싸미’는 역사왜곡 논란에 부닥치면서 95만명을 불러모으고 극장에서 사라졌고, ‘사자’는 미흡한 완성도로 혹평 받으며 160만 관객이 드는 데 그쳤다. ‘봉오동 전투’도 누적관객수 442만명을 기록했지만 손익분기점(450만명)이 높아서 결코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반일 감정도, 당초 예상과 달리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실상 유일한 흥행작은 ‘엑시트’뿐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4일까지 819만 관객을 만났다. 최근 ‘분노의 질주: 홉스&쇼’와 ‘변신’ ‘광대들: 풍문조작단’ 등 신작들이 개봉했음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선전했다. 다만 평일 관객 8만~9만명, 주말관객 20만명 미만으로 서서히 뒷심이 빠지고 있고 극장가 화제가 다음달 추석 개봉 영화로 옮겨 가고 있어 1,000만 달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반일 감정과 맞물려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은 그에 못 미쳤다. 쇼박스 제공

대작들의 성적 부진에 전체 관객수도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24일까지 8월 총관객수는 2,110만명. 아직 8월이 일주일가량 남아 있지만 지난해 같은 달 3,026만명보다 무려 916만명이나 적다. 최근 일일 총관객수가 평일 45만명 안팎, 주말엔 100만명 안팎 수준에 불과해, 그 격차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연간 관객수가 처음 2억명대로 올라선 2013년 이후 8월 총관객수 최저 기록도 예상된다. 지난해까지는 8월 총관객수 2,900만~3,200만명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그나마 7월에는 총관객수 2,192만명으로 지난해(1,978만명)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중 84.8%에 해당하는 1,858만명이 외국 영화 관객이었다. 한국 영화 총관객수는 334만명으로 2008년 이후 가장 적었고, 한국 영화 점유율은 15.2%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래저래 한국 영화에는 올 여름이 최악의 흥행 가뭄기였던 셈이다.

극장들은 “여름 영화들의 재미와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 게시판에도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평가가 어느 때보다 자주 올라온다. 상반기에 ‘극한직업’과 ‘어벤져스: 엔드게임’, ‘기생충’, ‘알라딘’ 등 1,000만 영화가 네 편이나 탄생한 것도 여름 극장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4.2회. 이미 상반기에 1년치 극장 관람 수요가 충족됐다는 얘기다. 올 여름엔 이 관객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일 만큼 빼어난 화제작이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 영화평론가는 “비성수기에도 영화만 좋으면 흥행하는 데서도 보듯 이제는 성수기와 비성수기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며 “액션과 사극 같은 대작 영화에만 편중된 여름 시장의 개봉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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