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직 휘문고 감독이 24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끝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강릉고와 결승전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김영직(59) 휘문고 감독은 그라운드에 나뒹굴며 온갖 세리머니를 즐기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휘문고는 24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막 내린 제4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대회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하며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휘문고는 이번 대회에서 배재고, 군산상고, 장충고, 충훈고, 성남고 등을 차례대로 제압하며 결승까지 올랐다. 최대 고비였던 준결승에서 난타전 끝에 성남고를 11-7로 누른 휘문고는 강릉고와의 결승전에서 더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3-5로 패색이 짙던 9회초 2사 후 신효수(3년)의 2타점 역전 적시타가 터졌다. 그러나 9회말 다시 동점을 허용하고 역전패 직전에서 강릉고 끝내기 주자가 홈에서 아웃되며 승부는 연장에 돌입했다. 휘문고는 10회초에도 2사 후에 박성준(3년)이 역전 적시타를 날렸고, 조민성(1년)이 10회말 1점차 리드를 지키며 3시간 49분간의 혈투에 마침표를 찍었다.

명가 재건의 중심엔 김영직 감독이 있었다. 포철고에서 지도력을 인정 받은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휘문고 사령탑으로 옮겼다. 1906년 개교하면서 야구부를 창단한 휘문고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한 대표 명문이다. 김 감독은 25일 “밖에 있을 때 휘문고는 ‘강남스타일이다’ ‘조직력이 떨어진다’ 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마치 내가 몸담았던 LG에 대한 편견과 같았다”면서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까 아이들이 너무 순진하고 착하더라. 잘못한 게 있어도 야단칠 게 아니라 잘 다독여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부임 당시 첫 인상을 떠올렸다.

2014년과 2016년 봉황대기를 제패한 팀이지만 최근엔 침체기였다. 올 시즌에도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고, 4강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았다. 예상을 깨고 지휘봉을 잡은 지 9개월 만에 휘문고를 정상에 올려 놓은 김 감독은 “선수들의 경험을 믿었다. 경기를 계속 이기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결승전 박빙의 승부에서도 우승 경험이 있는 우리가 강릉고보다 조금 나았던 것 같다”고 우승 원동력을 짚었다. 김 감독은 “특히 3학년 선수들은 마지막 전국대회라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와 솔선수범하며 정말 열심히 해줬다”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또 “강팀 덕수고를 잡아준 충훈고를 8강에서 만난 것도 우리에게 운이 따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승 후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는 김영직 감독. 서재훈 기자

코치들의 노고도 잊지 않았다. 김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에서 지는 경기는 대부분 볼넷과 실책 때문이다. 우리도 황금사자기 때 광주일고에게 콜드게임으로 진 이후 수비 훈련을 많이 했다”면서 “고등학교 코치는 할 일이 많고 정말 힘든데 코치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또 팀에 합류해 재능기부로 학생들을 도와준 최동수(전 LG 코치)도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고교야구판에서 몇 안 되는 ‘스타 출신 감독’이다. 1987년 MBC 청룡에 입단해 ‘영감’이란 별명으로 활약한 그는 LG의 두 차례 우승(1990ㆍ1994년)을 모두 함께 했다. 1995년 은퇴 이후에도 코치-2군 감독-수석코치를 두루 지내며 한 팀에서만 25년을 몸담은 LG의 프랜차이즈 멤버다. 그는 “LG에 있었던 1990년과 1994년 모두 한국시리즈에서 4전 4승으로 우승했는데 결승전에 강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나 보다”며 웃으며 “휘문고가 최근 6년 동안 봉황대기에서만 세 번 우승했는데 개인적으로도 프로 이후 처음이자 고교야구에 뛰어든 지 5년 만의 우승이라 영광스러운 대회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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