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올 10월부터 국내 의료기관에서 버리는 일회용 기저귀가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일반 쓰레기와 함께 처리된다. 정부가 감염 우려가 낮은 일회용 기저귀는 지금처럼 의료폐기물이 아닌 일반폐기물로 분류하는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폐기물이 해마다 급증하는 탓에 처리 시설 용량을 초과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감염병 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23일 정부와 폐기물업계 등에 따르면 비감염병 환자가 쓴 일회용 기저귀를 의료폐기물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폐기물 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현재 법제처 심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26일 환경부가 입법 예고한 이 법안이 시행되면 의료기관에서 배출된 비감염병 환자의 일회용 기저귀는 사업장 일반폐기물로 분류돼 일반 소각시설로 운반, 처리된다. 개정안은 감염병 환자나 감염병이 의심되는 환자, 감염병 병원체 보유자가 쓴 일회용 기저귀만 기존대로 의료폐기물로 분류하도록 했다.
현재 국내에선 의료폐기물과 일반폐기물이 따로 분리돼 이송부터 처리까지 별도 과정을 거친다. 의료폐기물은 최종 소각될 때까지 전용 용기에 담겨 밀봉된 상태에서 운반, 보관, 처리되는 반면 일반폐기물은 종량제 봉투에 담겨 보통 쓰레기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된다. 의료폐기물은 유실 등의 문제가 생길 경우 발생지나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할 수 있지만, 일반폐기물은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의료 현장에서 일회용 기저귀의 감염성을 정확히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기저귀 사용이 많은 요양병원 등은 감염병 의심 환자나 병원체 보유자를 판별해 해당 환자들이 사용한 기저귀를 별도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인력을 갖추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성환 단국대 미생물학과 교수는 “병원체 보유 여부는 발병하기 전까진 알 수 없다”며 “병원체에 오염된 기저귀가 위해성 관리를 하지 않는 일반폐기물로 분류된다면 처리 과정에서 환경이나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 여러 요양병원에서 배출돼 의료폐기물 중간처분 업체에 운반돼 있는 일회용 기저귀를 올 초부터 수집해 분석해왔다. 그 결과 최근까지 조사한 105개 병원 가운데 97개 병원 기저귀에서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이 검출됐다. 폐렴구균과 폐렴간균, 녹농균, 프로테우스균, 부생성포도상구균, 황색포도상구균 등이다. 김 교수는 “기저귀에선 세균이 10일 이상 생존할 수 있다”며 “법 시행 전 안전성과 위해성을 더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의사가 환자들을 감염병 환자인지 아닌지 판단한 다음 병원에서 감염병 환자들이 쓴 기저귀는 기존대로 의료폐기물로 분류하고 비감염성 환자 기저귀만 일반폐기물로 분리 배출하도록 하는 절차를 개정안 본격 시행 전 일선 병원에 교육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절차가 정착되면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용역연구에 따르면 국내 요양병원 500곳에서 감염병으로 진단받지 않은 입원 환자들이 배출한 일회용 기저귀를 폐기물 처리업체가 운반해가기 전 조사한 결과 약 6%에서 감염성 균이 나왔다. 환경부 관계자는 “감염병 증상이 없는 보균자 비율이 6%라는 얘기인데, 일반인들에서의 수치(13%)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의료폐기물공제조합에 따르면 국내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해마다 3~8%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발생량은 20만3,397톤에 달한다. 현재 전국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100% 가동했을 때 처리 가능한 양은 20만6,640톤이다. 지금도 많은 소각장이 기본적인 용량을 초과해 의료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게 환경부 설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전체 의료폐기물의 약 15%에 해당하는 일회용 기저귀가 일반폐기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결국은 처리 용량 부족이 문제인데, 소각시설을 새로 짓자니 지역사회의 반발이 예상돼 정부가 일단 ‘쉬운 길’을 택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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