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G7서 트럼프와 논의할 듯…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재확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3일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해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 등 한국 측이 국가와 국가 간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대응을 계속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 출국에 앞서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나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 환경에 비춰 한미일 협력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대응해 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아베 총리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전날 한국의 결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향후 미국과 제대로 연대하면서 지역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 일본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한국에 대해선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 해소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우선 약속을 지켜달라는 기본 방침에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오는 25일(현지시간)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 무역협상과 중동문제 등 현안 외에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자민당 총재 외교특보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 관계자는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했다”며 “G7 정상회의 등 국제적인 장에서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와는 더 거리를 둔 채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입장이다. 교도(共同) 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아베 정권 고위 인사는 “대화의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고, 일본 외무성 간부도 “한일관계는 당분간 냉각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일 정상회담은 당분간 보류가 불가피해졌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내달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면하더라도 정식 양자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오후 한국 측으로부터 지소미아 종료를 알리는 문서를 접수했다. 일본 정부는 지소미아 대신 북한 핵ㆍ미사일 정보 공유를 위해 2014년 체결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 재개를 한미 양국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이 보도했다. 티사는 한미일 간 정보공유 체제로 미국을 경유해 공유하는 간접교환 방식으로, 2016년 11월 지소미아 체결 이후 운용이 사실상 멈춰 있었다.
일본 각료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지소미아 유지를 공개적으로 희망해 왔던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장관은 “실망을 금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장관은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에 따른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라며 “한국 측 주장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고 정책을 엄숙하게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8일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 정부가 과잉 반응을 보인다면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한국의 의도대로 되기 때문에 냉정히 대처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에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선 “미국과 제대로 연대하면 문제가 없다”며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큰 영향이 없음을 강조했다. 반면 도쿄(東京)신문은 “정부는 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본심은 다르다”며 “안보 당국자 사이에선 지소미아 연장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내달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일의원연맹ㆍ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따라 연기됐다. NHK보도에 따르면 이날 자민당 소속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이같이 결정했다. 두 회장은 11월 초 합동총회 개최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신문들은 이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고, TV에서도 온종일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아사히(朝日)신문과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도쿄 내 한인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 지역상인들이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는 22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수행한 외무성 간부를 인용해 “이날 저녁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한 고노 장관의 휴대폰에 ‘이제 (파기를)발표한다’는 강경화 외교장관의 문자메시지가 와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표현 요구에 응하지 않고, 대부분 기사에서 ‘파기’를 고집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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