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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하러 학교 가요”... 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진 대구 고교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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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하러 학교 가요”... 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진 대구 고교생들

입력
2019.09.17 18:00
수정
2019.09.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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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불법도박] <상> 도박 밑천 마련하려 사채까지…학교는 불구경

※대구 고교생 상당수가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져있다. 판돈이 수 십, 수 백만원을 넘어가면서 도박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빌리거나 범죄로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는 쉬쉬하고 교육청은 사실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 도박 실태를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최근 대구 고교생을 중심으로 급격히 번지고 있는 휴대전화 불법 도박의 종류. 홀짝 숫자를 맞춰 배팅한 금액의 두 배를 받는 파워볼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최근 대구 고교생을 중심으로 급격히 번지고 있는 휴대전화 불법 도박의 종류. 홀짝 숫자를 맞춰 배팅한 금액의 두 배를 받는 파워볼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지난 7일 오후 6시 대구의 한 고등학교 정문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휴대폰 하나에 5, 6명이 얼굴을 바짝 붙인 채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그 중 하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휴대폰 도박에서 돈을 딴 것이었다. 학생들은 “요즘 이걸로 등록금까지 버는 친구들도 있다”고 떠들며 휴대폰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구지역 고교생 상당수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져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들 학생들은 도박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빌리거나 중고물품 판매, 부모 지갑에서 돈을 빼가는 경우도 있지만 교육당국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구의 한 학부모 정영근(47ᆞ가명)씨는 올초 고교 2학년인 아들이 휴대폰 불법 도박 때문에 200만원에 가까운 사채를 빌린 사실을 알고 돈을 대신 갚아줬다. 하지만 얼마 후 또 사채를 쓴 것을 알고 학교에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정씨는 “아들이 다니는 학급에 도박 문화가 퍼져있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지난해 아들 반 친구가 도박 때문에 전학 갔다는 얘기를 듣고 전학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대구의 또 다른 학부모 조영자(56ᆞ가명)씨에 따르면 최근 고교 3학년인 자녀가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온라인 중고거래사이트에서 지갑 판매 의사를 밝힌 후 돈을 받고 연락을 끊었다. 사기 혐의로 추적 받는 사실도 알게 됐다. 조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지갑에 돈이 조금씩 사라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조씨는 “아들이 게임을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도박을 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며 “도박치료센터를 찾았더니 아들은 도박 중독, 그것도 중증이었다”며 허탈해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대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지역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4.6%가 도박으로 인한 위험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지만 도박 사실을 밝히지 않은 학생들을 감안하면 상당수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은 도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휴대폰과 컴퓨터를 이용한 불법도박은 달팽이 사다리 로하이 슈퍼볼 등으로, 게임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성인인증도 필요 없고, 한 번에 걸 수 있는 판돈의 제한도 없다. 올 초에는 대구의 고교생 8명이 한꺼번에 1,000만원이나 되는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학교에서 도박을 하면 더 집중도가 높아지는데다 돈을 따면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할 수 있어 더 스릴이 넘친다”며 “매일 업그레이드 되는 게임 종류와 정보 교류도 실시간 할 수 있어 학교는 우리한테 도박장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도박경험자를 보면 주변에서 도박하는 사람을 보고 빠져드는 경우가 49.3%나 된다”며 “인문계 학생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학급 분위기나 친구들의 영향을 더 받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도박 밑천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법 사채를 빌리는 경우가 많고, 사채 규모가 커지면 부모가 대부분 대신 갚아주지만 외부에는 알리지 않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학교 측도 도박 실태에 대한 심각성을 고민하지 않고 있어 대구시교육청도 사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 측은 “지난해 10월 청소년도박피해교육에 관한 조례가 통과해 연 1회 의무적으로 학교별로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고 의례적인 답변에 그쳤다.

한 교사는 “청소년들의 도박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청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공론화해야 한다”며 “청소년 도박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도박 습관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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